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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정경준/내팽개친 직업윤리

입력 | 1998-02-16 19:31:00


영업인가 취소가 확정된 10개 종합금융회사 가운데 삼삼 경남 고려 신세계 쌍용 한화 신한 항도 등 8개사 직원들이 일손을 놓았다. 이들은 14일 오후 노조 대표자회의를 열어 “금융위기의 주범은 종금사가 아니라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을 조장한 정부와 재벌”이라고 규정하고 생계보장을 요구하며 16일부터 무기한 업무거부에 들어갔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이제까지 잠잠하다가 갑자기 왜 떠드느냐”는 등의 반응이 금융계 안에서도 나왔다. 당사자들의 변명은 구차하기만 하다. 삼삼종금의 한 직원은 “내일 모레면 없어질 회사인데 업무를 거부하든 파업을 하든 어떠냐”며 “가교종금사측이 사실상 회사를 접수한 상태여서 일을 계속하려 해도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요구 사항도 분명하지 않다. ‘직원들의 명예회복’ ‘대주주의 고통분담’ 등의 구호에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차라리 ‘우리사주(社株)가 휴지조각이 돼 수천만∼수억원의 손해를 입었으니 보상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솔직한 편일 것이다. 대다수 국민은 종금사라는 말만 들어도 유쾌한 기분이 아니다. 무분별한 외화차입으로 오늘의 환란(換亂)을 부른 책임이 크다. 영업정지를 당한 증권 투신 종금사들의 불법행위도 잇따라 드러났다. 국민은 수조원대에 이르는 종금사 부실을 가교종금사인 한아름종금을 통해 혈세(血稅)로 떠안고 있다. 작년말 고려증권 직원들이 고객 예탁금 지급을 거부하며 파업을 벌일 때도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종금사 직원들의 업무거부는 믿음을 생명으로 하는 금융기관 직원들이 자기 신용을 스스로 짓밟는 것이며 최소한의 직업윤리에도 어긋난다. 정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