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의 ‘주연배우’로 은행이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차기 정부는 재벌들이 은행빚을 얻을 때 계열사끼리 보증을 서주는 상호지급보증을 전면금지하는 대신 은행이 채무 기업에 구조조정을 요구(재무구조개선 약정체결)토록 하거나 아예 채무 기업의 대주주(출자 전환)로 나설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이와 관련, 시중 은행들은 기업 경영상황과 신용을 파악하는 심사 인력을 보강하고 외부 전문기관의 자문을 받는 등 기업 경영에 대한 개입을 준비하고 있다. ▼은행들 바빠졌다〓은행들은 우선 이달중으로 30대 그룹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는다. 은행들은 지난주말 실무자협의를 통해 약정의 주체는 해당 그룹 총수와 주력 기업의 대표이사 2명으로 정했다. 먼저 이들 2명과 은행이 그룹 차원의 약정을 맺고 계열사에 대한 약정은 신규 차입이나 상환기한 연장이 있을 때 별도로 맺을 방침. 시중 은행들은 중장기적으로 심사기능 강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앞으로 기업 경영에 대해 조언하고 필요한 사항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재무내용은 물론이고 생산 유통 인사 등 비재무 사항에 대한 평가가 필수적이기 때문. 서울은행은 이미 심사역들을 국내외 전문기관에 위탁, 교육을 시작했다. 조흥은행은 재벌 이외 기업과도 유사한 약정을 맺기로 하고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 △계열신용등급(ABCD)중 B등급 이하 △협조융자 등 정상화금융 수혜업체를 중심으로 대상기업 선정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한 시중 은행 고위관계자는 “은행이 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빌려준 자금의 안전한 회수를 위한 것”이라며 “경영권을 장악하는데는 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기업평가 전문기관들도 뛴다〓수십년간 계속돼온 관치금융은 은행들이 기업에 대해 적절히 진단할 수 있는 심사기능을 퇴화시켰다. 당장에 써먹을 심사인력이 태부족이다. 때문에 국내외 기업신용평가기관들이 뛰고 있다. 한 시중은행은 최근 미국계 신용평가회사인 D사로부터 업무제휴 제안을 받았다. 출자전환을 했을 때 이익을 볼 수 있는 기업이나 약정에서 요구할 구체적인 구조조정 조치들에 대한 컨설팅을 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한국신용정보 등 국내 3대 신용평가회사들과 회계법인들도 유사한 분야에서의 컨설팅을 제공하겠다며 시중은행들에 접근중이다. ▼문제점〓은행들이 기업들의 경영을 옥죄는 악역을 맡게 될 우려도 적지 않다. 여신회수가 목적인 은행들이 기업의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에 보수적인 입장에서 제동을 걸기 쉽기 때문. 또 출자전환은 당장에는 은행의 부실여신을 줄이고 기업의 부채비율을 줄이는 효과가 있지만 출자전환을 했던 기업이 망하면 은행은 그나마 담보권도 행사하지 못하고 빌려줬던 돈을 모두 손실로 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예상된다. 〈이용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