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칠십평생동안 모은 돈을 가톨릭대에 기증한 데 이어 죽은 뒤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했던 김정실(金楨實·72·서울 용산구 신계동)할머니. 서울시가 그의 공로를 뒤늦게 인정, 16일 ‘생활속의 숨은 일꾼’상을 수여했다. 뒷굽이 닳아 빠진 슬리퍼를 신고 헝겊조각이 서너군데 붙은 저고리를 자랑스레 입고 다녀도 부끄럽지 않은 김할머니를 동네사람들은 ‘정승 할매’라 부른다. 해방이 되던 해 19세의 꽃다운 나이로 평안남도 진남포를 떠나 시댁이 있는 대구를 찾아 단신으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51년 서울로 이사, 노동일을 하는 남편을 도와 삯바느질을 하며 돈을 모았다. 배우지 못한 한이 있어 학생들에게 하숙을 쳐 뒷바라지를 하며 모은 돈 4억5천만원을 지난해 대학에 선뜻 기증한 것. ‘세상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무릎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번 돈을 그렇게 선뜻 기증할 수 있었나 보다. 6.25전쟁 때인 51년 실과 바늘을 손에 든 뒤 하루에도 30번씩 꿰매고 풀고 하는 작업을 되풀이하며 번 돈은 당시 돈으로 하루 15원 정도. 할머니는 그중 3원으로 간단한 끼니거리만 사고 나머지는 쌈지주머니에 챙겨두었다. 하숙생에겐 반찬 다섯 가지, 자기 밥상엔 간장과 김치 두가지가 고작이었다. 눈이 어두워져 삯바느질도 그만둔 김할머니는 요즘 성당 노인대학에 나가 할아버지 친구들과 노래배우고 율동하는 재미에 흠뻑 젖어 산다. 한편 서울시는 이날 김할머니와 함께 지난달 10일 광진구 구의동 스포츠센터에서 버스 탈취범을 목격, 이를 저지하다 범인의 난폭운전으로 숨진 신형수(申亨秀·27)씨 등 개인 5명과 지양봉사대 등 단체 2곳을 ‘숨은 일꾼’으로 선정했다. 〈하태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