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CIA 「후세인 제거」는 미완의 공작』…ABC보도

입력 | 1998-02-16 19:46:00


‘사담 후세인 제거.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의한 미완(未完)의 공작.’ 미 ABC방송은 최근 CIA가 추진해온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 제거공작을 상세히 소개했다. ABC는 전직 CIA 고위관료들, CIA와 함께 공작에 나섰던 쿠르드족 지도자, 반(反)이라크 활동을 하고 있는 전 이라크 군관계자들의 증언 등을 통해 CIA가 후세인 제거작업에 깊숙이 개입했었다고 밝혔다. CIA의 후세인 제거작전은 91년 걸프전이 끝난 후부터 시작됐으며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초기시절까지 추진됐다. 이 작전은 결국 실패했지만 CIA가 중도에 포기한 증거도 있다. 후세인 제거공작에 1억달러 이상의 비용이 들었으며 공작에 가담했던 수많은 쿠르드족이 ‘CIA의 배신’으로 희생됐다. 70년대 중반이후 미국법은 외교정책의 수단으로 ‘살인’을 할 수 없도록 명문화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95년 후세인 암살기도에 나섰던 CIA 관리들을 비밀리에 조사했으며 이로 인해 당시 CIA의 비밀공작도 위축됐었다고 미국 언론들이 15일 보도했다.다음은 ABC방송이 전한 내용. ▼CIA와 이라크국민회의(INC)〓조지 부시대통령이 CIA의 후세인 제거작전을 비밀리에 재가한 것은 91년 5월. 걸프전 승리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전쟁에 패했음에도 후세인은 건재한데다 오히려 그의 권력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처음 눈에 띄는 동조세력은 쿠르드족 반군세력들. 80년대 이라크의 화학무기(사린가스)공격으로 대량학살을 당한데다 이라크와 터키 이란 요르단 접경지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쿠르드족은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반이라크 투쟁을 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CIA는 반군지도자 아메드 살라비를 백악관으로 초청, 지원을 약속한 후 92년 5월 쿠르드족 파벌들의 연합체인 이라크국민회의(INC)를 뒤에서 주도했다. CIA는 94년 10월 이라크 북부 살라후딘에 직접 공작기지를 설치하고 비밀공작대 3개팀을 파견했다.공작팀은 INC에 군사물자를 제공하고 병력을 훈련시켰다. 그러나 95년 3월 D데이를 불과 이틀 앞두고 CIA는 INC에 대한 지원을 철회했다. 살라후딘의 기지도 폐쇄했다. CIA가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을까. INC가 무력공격에 나설 경우 미국이 전면적으로 개입하게 될 가능성, INC 공격이 후세인을 제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 쿠르드 내부의 분파행동에 대한 통제불능 때문으로 알려졌다. 현재 INC는 CIA의 지원없이 독자적인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CIA와 이라크국민화합(어코드)〓반군의 무력을 앞세운 후세인 제거공작을 중단한 워싱턴은 96년부터 ‘궁정쿠데타’시도로 방법을 바꾸었다.걸프전 이후 영국첩보기관 MI6에 의해 조직돼 요르단 암만에서 활동하고 있던 ‘어코드’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어코드는 이라크에서 망명한 군 고위장교들이 주축이 된 반정부단체다. 이들은 이라크 군과 정부의 고위층에 ‘끈’이 있다며 쿠데타를 위한 미국의 지원을 요청했다.그러나 어코드는 96년 6월 특수 통신장비를 암만에서 바그다드로 밀반입하던 중 이라크 군정보기관에 적발돼 쿠데타는 무산됐다. ▼미국의 고민〓91년 걸프전 직후 이라크 남부에서 시아파이슬람교도들에 의한 무장봉기가 있었으나 부시행정부는 후세인의 진압을 방관했다. 당시는 오히려 이들의 봉기가 승리해 이란과 인접한 이라크마저 과격 이슬람국가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후세인은 밉지만 ‘이라크’가 무너질 경우 생겨날지도 모를 힘의 공백과 이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중동전역의 불안을 미국은 원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윤성훈·구자룡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