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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紙上 경제청문회⑥]각계 50인에게 듣는다

입력 | 1998-02-17 07:53:00


경제청문회에 거는 국민적 관심과 기대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본보 취재팀이 각계 인사에게 경제청문회에 관한 견해를 묻자 이들은 마치 준비라도 해온 것처럼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외환위기를 초래한 원인과 위기 가능성 은폐의혹에 대해서는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는 게 응답자들의 공통의견이었다. 응답자는 △대학교수 연구원 등 13명 △회사원 12명 △기업경영인 8명 △노조지도자 4명 △법조계 2명 △교사 주부 일반시민 등 11명으로 총 50명. ▼청문회 방식〓국회의원들 뿐만 아니라 금융 및 정책결정 과정에 밝은 전문가들과 시민대표들이 폭넓게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22명으로 압도적이었다. ‘청문회가 정치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국회의원은 배제하고 전문가와 시민들만이 참여해야 한다’는 응답자도 17명이나 됐다. 이윤호(李允鎬)LG경제연구원장은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청문회를 맡아야 한다”고 밝혔다. 임영화(林榮和)변호사 엄기웅(嚴基雄)대한상공회의소이사는 “대상자들이 발뺌만 하지 못하도록 일단 조사를 다 해놓고 회계 외환전문가 교수 변호사 등 전문가집단이 청문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금융연구원 박경서(朴景緖)연구위원, 한국개발연구원 이덕훈(李德勳)금융팀장과 ㈜풀무원 최종동(崔鍾東)상무, 안병룡(安秉龍)변호사, LG그룹 정상국(鄭相國)이사는 “청문회에 앞서 미리 질의서를 주고 답변을 받은 뒤에경제금융회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패널이 토론형식으로 의문점을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모 국책연구소 연구원의 지적대로 ‘의혹만 제기하는 청문회’여서는 곤란하다는 것. TV생중계에 관해 홍경임(洪景任·28·여)교사처럼 “모든 국민이 지켜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과 박명광(朴明光)경희대교수 등의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하고 끝난 뒤 언론에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렸다. ▼이것이 궁금하다〓전국화학노련 박헌수(朴憲洙)위원장을 비롯해 응답자 대부분이 “위기 징후를 언제 알았으며 그 뒤 왜 늑장대응을 했는지 규명해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구체적으로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위기 가능성을 언제 보고받았으며 실무자들의 보고서를 강경식(姜慶植)전부총리 등 고위선에서 폐기하지 않았나 하는 점. 변윤우(邊允雨·55)교사는 “위기를 알고도 쉬쉬했는지 여부를 밝혀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모 경제연구소 이사는 “누가 잘못했는지가 궁금한 게 아니라 보고라인 의사결정과정 지시 시행 등 경제운용 시스템 가운데 어디가 잘못됐는지 가려야 한다”며 구조적 잘못을 중점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서울YMCA 신종원(辛鍾元)부장은 “(정책당국자들이) 잘해보려다 위기를 초래한 것인지, 무지해서 그런 것인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의 김기식(金起式)사무국장은 “은행권의 과다한 부실채권과 종금사 부실경영에 대한 정부감독, 기아사태 처리 등 산업정책, 삼성자동차 등 재벌들의 대형사업 인허가과정, 정부 부처 내의 경제위기 경보시스템 등을 종합적으로 되짚어봐야 한다”고 폭을 넓혔다. 구체적인 정책실패를 들며 각각의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는 주문도 많았다. 김학은(金學)연세대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정책처방인 고금리정책을 지난해에 도입했으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텐데 왜 검토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지난해 초부터 유연한 환율정책을 시행하지 않은 이유를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영삼정권 5년 동안 급증한 외채는 누가 어디다 쓴 것이며 종금사가 단기차입금을 끌어쓰는 것을 왜 방치했는지, 기아사태를 다룰 때 정부의 숨은 의도가 있었는지 밝혀내야 한다는 요구도 많았다. 김대식(金大植)중앙대교수는 “현 정부가 출범할 때 4백여억달러였던 외채가 1천5백억달러 이상으로 불어난 것이 핵심 쟁점”이라고 강조했다.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해외차입과 이를 방치한 정책당국의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는 것. 위기를 감지하고도 막판까지 우리 경제의 기초여건은 튼튼하다고 강변한 배경은 무엇인지 직접 들어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강전부총리에게 경제실험을 한 것이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고 심경을 밝혔다. 대학원생 조성규(趙誠奎)씨는 외환위기가 본격화했음을 알았으면서도 늑장을 부리다 뒤늦게야 IMF구제금융을 신청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책임자 처벌〓응답자중 31명이 ‘책임소재가 밝혀진다면 법대로 처벌해야 한다’며 사법처리를 주장해 ‘정책결정 문제인 만큼 사법처리는 피해야 한다’는 응답자 15명의 두배가 넘었다. 박광호(朴光鎬·52·패스트푸드점 주인)씨는 “국민에게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안겨준 책임자들을 엄정히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화학노련의 박위원장은 “5년만에 국가경제를 파탄으로 몰고갔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으면 국민의 건전한 상식에 맞지 않는다”며 처벌론을 강조했다. 변윤우교사는 “책임자가 가려진다면 가만히 둘 수 없다”며 “꼭 벌금을 물리자”는 이색제안을 하기도 했다. 한 회사원은 “모든 책임자를 예외없이 사법처리해 국가의 체계와 도덕적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명광교수는 “굳이 따지자면 국민 모두의 책임인데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느냐”면서 사법처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김학은교수는 “사람보다는 시스템이 문제”라면서도 “직무유기가 확인되면 처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청문회에서 얻을 교훈〓IMF관리체제를 초래한 직접적 원인인 외환관리시스템을 재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을 낸 응답자가 24명으로 가장 많았다.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동경보 체계도 갖춰야 한다는 것. 주로 교수 연구원 경영자 등이 이를 강조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노상욱(盧相旭)책임연구원은 “외환관리 시스템상의 허점을 발견, 메커니즘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무능한 집권자를 처벌, 공직자의 책임의식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도 많았다. 주로 노조지도자와 회사원 등 13명이 이런 견해를 보였다. 현대중공업 윤재건(尹在建)노조위원장은 “군사정권도 국가경제를 이렇게 망쳐놓지 않았다”며 “책임자를 분명히 가려 무능한 관료가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아자동차 고종환(高鍾煥)노조위원장은 “재벌과 정책당국자의 책임을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참여연대 김기식국장은 “경제정책 결정권자들도 잘못하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경고를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전체의 구조조정을 주장한 사람은 법조계 2명, 기업관계자 3명, 학계 1명 등 6명. 임영화변호사는 “대기업 차입경영의 문제점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새정부의 재벌개혁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하는 등 6명은 청문회를 경제 구조조정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부 박정애(朴貞愛·34)씨는 “남편 월급만 빼놓고 값이 다 오르는 게 요즘 현실”이라며 “청문회가 투명한 경제정책을 세우는 계기가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임규진·백우진·신치영기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