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니(Sunny)의 생일, 무슨 게임을 할까?” “병마개 튀기기!” 지난 ‘13일의 금요일’ 밤 9시반, 서울 압구정동의 카페 ‘좋은세상 만들기’ 한복판 테이블. 회사원 이선희씨(26·여)는 자신의 생일모임 들머리에 친구 4명과 무슨 게임을 할지부터 정했다. 이날 게임은 맥주컵 5개를 앞에 두고 엄지손가락 위에 올려놓은 병마개를 튀겨 컵안에 빠뜨리는 것. 실패하면 벌주 한 잔. 쉬울 것 같았지만 녹록하지 않았다. 튀긴 병마개가 컵 언저리만 스치기 일쑤. 성공할 때까지 계속 튀겨야 하므로 몇 컵씩 연거푸 마시는 경우가 이어졌다. 1시간도 안돼 2명의 혀가 꼬부라지기 시작했다. 요즘 직장인들은 술을 그냥 마시지 않는다. 온갖 게임이 따라다닌다. 평소 가라앉은 기분을 술자리에서라도 풀어보자는 것. 2차로 단란주점에 가서 따로 스트레스를 풀 필요가 없으니 술값도 아낄 수 있다. 11일 밤 8시경 압구정동의 맥주집 ‘카지노’. L기업 홍보팀 직원 9명의 회식자리. ‘마셔라’는 말을 하든지 상대방의 이름 직급 호칭을 부르면 벌주 한 잔. 외래어를 써도 마찬가지. 맥주집에선 외래어를 쓸 일이 많아 조금만 방심하면 술잔이 잇따라 들어온다. 한 여성이 손가락으로 차림표를 가리키며 외래어를 피하기 위해 “안주는 이것”“술은 요걸로 여섯 잔”이라고 주문하면서부터 폭소가 터졌다. 팀장인 손모씨(42)는 “한바탕 신나는 게임을 하고난 뒤 회사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다”면서 “호칭을 부르지 않는 규칙 때문에 서로 오빠 언니로 부르면서 가족애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유행하는 게임의 종류는 ‘007빵’ ‘간다간다 뿅’ ‘먹고놀자’‘토끼토끼당근당근’등헤아릴수없을 정도. ‘국제통화기금(IMF)식 조건’이 있는 게임도 있다. 술을 도저히 못먹겠으면 남자는 ‘백장미’, 여자는 ‘흑기사’를 지정해 지원을 요청한다. 흑기사나 백장미는 구원을 요청한 이에게 조건을 내건다. “볼에 입술을 대” “담뱃불 붙여 봐” 등등. 조건을 들어주면 술을 대신 마셔주지만 ‘협상’이 깨지면 지원 요청을 한 이가 한 컵의 벌주를 더 마셔야 한다. 술을 더이상 못 마셔 게임에서 탈락하면 ‘노예’로 팔리는 신세. 경매방식으로 ‘노예’를 사서 ‘주인’이 되는 사람은 일정 기간 ‘노예’에게 영화구경이나 저녁식사 등을 시켜주도록 요구할 수 있다. 회사원 김모씨(27·여)는 “최근 직장동료들과 증권회사 남자직원들간의 술자리에서 과음했다가 나에게 5만원을 준 사람의 1주일 ‘노예’가 됐다”면서 “그 사람이 1주일에 세번 저녁을 사달라는 전화를 걸어왔는데 두번은 요구를들어주었다”고말했다. 물론 두사람은미혼남녀. 주부 서형숙씨(40·서울 서초구 잠원동)는 “지난해 부부송년회 모임에 몇번 갔었는데 서로 말조심하면서 조용히 있는 것보다는 노래 점수내기를 하면서 논 경우가 훨씬 좋았다”면서 “지나치게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남편이 부하직원들과 즐겁게 술자리를 보내기 위해 하는 벌주게임 정도라면 백번 찬성”이라고 말했다. 〈이성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