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미제사건으로 역사에 묻힐 뻔 했던 ‘김대중(金大中) 납치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가 치밀하고 조직적인 사전계획을 세우고 국내외 공작요원을 동원해 일으켰다는 사실이 사건발생 25년만에 최초로 문서로 확인됐다.
동아일보는 18일 중정과 그 후신인 국가안전기획부가 보관해온 극비문건 ‘KT공작요원 실태조사보고’를 단독입수,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문건에는 김대중씨를 일본 도쿄(東京)에서 서울까지 납치했던 중정요원 25명과 김씨를 오사카(大阪)부두에서 부산까지 실어나른 ‘용금호’선원 21명의 명단및 그들의 역할, 사후 중정의 관리내용이 모두 수록돼 있다.
비밀문건의 제목 ‘KT공작’은 중정이 김대중씨 이름의 영문 이니셜을 따서 붙인 사건 암호명이다.
79년3월10일 김재규(金載圭)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朴正熙)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한 이 문서 하단에는 ‘대통령 각하 보고필’이라고 적혀 있어 박대통령도 최소한 사건발생 후 납치 전모를 보고받았으며 중정의 진상 은폐를 추인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문건에는 이밖에도 △실태조사 대상인원에 대한 관리현황 △공작관련 선박처리현황 △공작요원 사후 관리 자금관계 △조사실시 목적 △실태조사대상 △결론 등이 들어있다.
문서에 수록된 ‘KT사건행동별 관여인사 일람표’에 따르면 납치사건의 최고책임자는 이후락(李厚洛)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으며
이철희(李哲熙)정보차장보―하태준(河泰俊)해외공작국장(8국) ―윤진원(尹鎭遠)8국공작단장
―김기완(金基完)주일대사관 공사 등으로 사건지휘가 이루어졌다.
또 나머지 중정요원들은 대부분 주일대사관이나 오사카총영사관 근무자들이며 현장책임자로 서울에서 건너간 윤단장의 지휘에 따라 △납치 △도쿄→오사카 안가(安家) △오사카→오사카부두 △오사카부두→부산 △부산→서울안가 이동 등 각 단계별로 9개조가 투입돼 치밀하게 움직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도쿄 그랜드팔레스호텔에서 김대중씨를 납치하는 작전은 윤단장과 한춘(韓椿) 김병찬(일명 김동운) 홍성채(洪性採)주일대사관 1등서기관, 유영복(劉永福) 유충국(柳忠國)2등서기관이 맡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용금호가 부산에 도착한 뒤 김선배(金仙培)당시 중정 의무실장이 김씨의 건강상태를 진찰했으며 서울로 이송된 뒤에는 하태준국장이 직접 김씨의 상태를 확인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한편 특수공작의 경우 대통령의 결재없이 구두지시로 공작이 진행되고 대통령이 사후보고를 받는다는 정보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볼 때 박대통령이 김대중씨 납치를 직접 지시했을 가능성도 높다.
〈특별취재반〉
◇특별취재반 명단
정치부=윤영찬기자
국제부=이재호 워싱턴특파원
윤상삼 도쿄특파원
권순활 도쿄특파원
사회부=이병기 이현두 성동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