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독립운동가, 불교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선각자, 최초의 서양식 찬불가 작곡자, 30여종의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30여권의 책을 펴낸 불교이론가…. 수많은 업적을 남겼음에도 만해 한용운의 그늘에 가려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백용성(白龍城·1864∼1940)선사. 용성선사가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불교계에서 그를 추모하고 재조명하는 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전북 장수 출신으로 1884년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은 그는 1911년 서울 종로구 봉익동에 대각사(大覺寺)를 창건하고 1913년 종로구 안국동에 선학원을 세워 대중포교에 힘썼다. 1919년에는 3.1운동 주동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1년에는 대각교를 창립, 일제의 식민지정책으로 대처승이 판을 치던 당시 왜색 불교에 맞서 비구승단의 전통을 지켜나갔다. 대각운동을 펼쳐 한자 일색이던 불교 전례는 물론 관혼상제 용어를 쉬운 한글로 바꾸고 절차를 간소화하는데 앞장섰다. 1927년 간행된 ‘대각교의식’은 이같은 그의 노력의 결정판. 최초의 서양식 찬불가인 ‘왕생가’ ‘대각가’ ‘권세가’ 등이 실려있다. 국악계에는 서양음악 기법으로 작곡된 최초의 국악곡이 39년 작곡된 ‘황화만년지곡’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용성선사는 이보다 12년 앞서 굿거리장단에 오음계로 된 신민요풍의 ‘왕생가’를 발표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박범훈단장은 “일제의 박해를 감안한다면 스님이 찬불가를 작곡한 시기는 간행된 연도보다 최소한 4∼5년은 앞설 것”이라며 “초기 서양음악 작곡자로서 용성스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각사 조실 도문스님은 “용성스님은 1908년부터 2년동안 중국 베이징(北京) 등에 머무르면서 영국유학을 다녀 온 중국인으로부터 서양식 작곡법을 배워 찬불가를 작곡하고 직접 풍금을 연주하며 찬불가를 가르쳤다”고 말했다. 대각사는 3월1일부터 4월말까지 서울 서초동 대성사, 부산 금정산 범어사 천룡사, 가야 해인사 등 용성선사와 관련된 사찰을 돌며 법회를 갖고 선사의 대표적 저서인 ‘각해일륜(覺海日輪)’1만권을 무료 배포한다. 스님의 유훈을 받들고 있는 대각회(이사장 광덕스님)는 3월13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대각사에서 대각사상연구원(원장 한보광)개원기념 학술발표회를 갖는다. 22일 오전 10시에는 대각사에서 용성스님 열반 58주기 법회가 열리고 4월3일부터 5월초까지 전북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의 생가 유허비 제막식을 시작으로 용성스님 관련 유적지 순례가 이어진다. 4월23,24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백용성선사 음악제’가 열려 선사의 일대기를 그린 ‘용성’이 연주된다. 〈김세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