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츠만 흘러나온다면 꼭 무도회장 같은 궁궐.’ 권기원씨(33·㈜고합 멕시코사업팀 계장)를 덕수궁에서 만났을 때 찬바람이 제법 매서운데도 웨딩드레스와 턱시도 차림의 신랑 신부들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느라 법석을 떨고 있었다. “조선왕조가 최후를 맞이한 곳이라는 비장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나라가 망하려다보니 궁궐을 쪼개 남의 나라 대사관에 나눠주고 그나마 남은 것마저 만신창이가 됐어요.” 젊은 그의 귀에, 지나간 역사속 인물들의 아옹다옹하는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는 듯 그는 자주 얕은 한숨을 뱉어낸다. “성종의 형 월산대군이 살다 임진왜란 땐 선조가 옮겨살았지요. 이곳에서 광해군 인목대비가 폐위됐고 고종이 마지막 숨을 거뒀어요.” 번잡한 궁궐에 감춰진 속내를 훑어내는 그의 지식이 보통이 아니다. ―원래 역사공부를 좋아했나요. “학교다닐 땐 넌더리를 냈어요. 무역학과를 택한 것도 역사 같은 돈 안되는 학문보다 장사꾼으로 성공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어쩌다 관심을 갖게 됐어요. “대학 때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갔는데 모처럼 짬을 내 홋카이도에 있는 마시케라는 곳에 갔어요. 일본 전역에 살고 있던 외국인들이 ‘자기나라 알리기’ 대회를 하는데 한국 유학생 한명이 유창한 일본어로 한국 역사를 설명하더라고요.” 대회가 끝나자 일본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달려가 징용과 6.25로만 알고 있던 한국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감탄하더란다. 한편으론 한국을 너무 모르는 일본인들에 속상했지만 자신은 과연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부끄러웠다. 회사에 입사해 선배로부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문화역사탐방 프로그램에 같이 가보자는 제의를 받고 선뜻 나선 것이 지난 95년. 그후로 3년여를 거의 매주 쫓아다녔다. “앞만 보고 달리던 일상에 차츰 진이 빠질 때쯤 과거로의 여행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지요. 선인들의 체취가 담긴 유적들과 그들이 살다간 이 땅에는 생과 사, 유와 무, 영광과 상처, 진실과 거짓 등 오늘날 우리들이 싸 안고 사는 고민들이 다 녹아 있더라고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던가, 모를 땐 그냥 스쳤던 돌멩이 하나도 예사롭지 않았다. 앎에 대한 갈증은 그를 더욱 옛 것에 몰두하게 했고 그리하여 그를 변화시켰다. 금방 뜨거워지고 금세 식었던 성격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눈에 보이는 가식적인 아름다움보다 평범하고 소박한 것들 속에 숨은 진실과 아름다움을 보는 안목도 생겼다. 화려한 사찰이나 유적보다 절터만 남은 폐사지에 더 정이 가는 것도 그 때문. “과거를 보면 현재가 보여요. 결국 오늘을 통해 내일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우리는 너무 과거에 무심해요. 자기를 모르고 남의 것만 좇다가 결국 경제 문화적 식민지(?) 지경까지 간 것 아닌가요.” 〈허문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