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 다국적기업 듀폰은 창립부터 80년대말까지 불황을 경험하지 못했다. 거의 매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들어오는 돈으로 타기업을 흡수합병하며 사세를 키우는 것이 전통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90년대 초반 미국을 휩쓴 불경기의 여파로 이 회사는 하루 아침에 많은 인수기업을 잃어 사세가 한창때의 50% 수준에 머물 정도로 위축됐다. 듀폰의 사례는 미국 기업들에게 ‘호황일 때 불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특히 불황을 맞았을 때 가장 소중한 것은 ‘현금’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 결과 미국의 대기업들은 최근 수년간의 사상 유례없는 호황속에서 경쟁적으로 불황대책을 세우고 있다. 대표적 불황대책은 사내 유보를 많이 하는 것. 90년도 사내유보금이 36억달러였던 제너럴 모터스(GM)는 현재 1백40억달러를 쌓아 놓았으며 크라이슬러자동차도 비축자금이 15억달러에서 51억달러로 늘었다. IBM AT&T 모빌 필립모리스 등 미국 굴지의 다른 기업들도 신규투자후 남은 돈을 대부분 현금형태로 수십억달러씩 비축, 불황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기업들은 투자도 대부분 신기술 및 신상품개발에 한정하고 있으며 무리한 사세확장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심지어 건축경기가 활황을 보여 요즘 한창 재미를 보고 있는 페인트와 유리업체들은 불황대책 보고서를 만들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런 기업들의 태도를 엄살이라고 비판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또 기업들의 방어적 경영추세가 확산될 경우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준다는 비난도 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실린 기업인들의 대답은 명확하다. 과거 경제학자들의 경기순환이론만 믿고 불황에 대비하지 않았다가 결국 기업들만 손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기업인들 사이에는 최악에 대비하면 최소한의 피해로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요지의 신경영철학이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다. 뉴욕타임스지는 한 술 더 떠 불황에 대비한 기업인들의 이같은 의식변화 덕분에 미국은 더 오랫동안 견실한 호황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이규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