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문명과 야만」 히틀러 같은 인간이 그의 야심을 실현시키는데 그토록 성공할 수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에 기꺼이 협력하는 수백만의 동조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앞으로 수세기 동안 인류가 깊이 돌이켜 생각해야 할 현상이다. ―콘라트 하이든 이삼성교수의 ‘20세기의 문명과 야만’. 20세기 문명을 피로 물들인 전쟁의 폭력과 야만. 그 폐허의 현장을 살펴보며 20세기 문명의 문제점과 21세기로 넘겨지는 과제들을 되새겨본다. 근대 자본주의의 기술문명과 강대국 권력정치가 낳은 인종주의 식민지주의 제국주의. 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낸 제2차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 일본의 군국주의, 세기말에 이어지는 보스니아와 르완다의 비극 등등. 이에 대한 여러 학문분야의 논의와 사색의 궤적을 아우른다. ‘우리가 20세기 문명이 토해내고 있는 거대한 비극들을 떠올린다면 대서양 문명의 정신적 기반이라고 할 근대이성이라는 것, 그리고 그와 연관된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 전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저자는 그 어떤 지적 성찰도 20세기 후반 국제질서와 문명의 부패를 상징하는 베트남전에 대한 진실한 대면없이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베트남 전쟁은 우리에게도 깊은 역사적 부담을 남겼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성은 한국인들이 어떻게 이 전쟁에 ‘개입’하여 ‘행동’했는가에 대한 정직한 대화를 필요로 한다. 마치 한국전쟁에 있어서 미국의 군사개입을 전쟁현장에서 실행된 방식, 즉 전쟁행위에 임한 미국의 구체적인 모습들에서 평가해야 하듯.’ 그는 이어 핵무기의 존재와 그에 대한 우리의 무감각과 체념을 질타한다. 핵무기는 근대 과학문명이 인류의 삶과 생존 자체에 던지는 ‘부메랑’의 위협이며 인간이성의 자연지배와 활용이 인류 자신에게 거꾸로 들이민 ‘반역의 칼날’이라는 것. 언뜻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상기시키는 방대한 스케일의 저작. 역사적 문제의식을 정치사회적 제도적 맥락에서 담금질하고 있는 점도 닮았다. 하지만 헌팅턴이 서구 강대국의 패권주의 제국주의적 기도를 은연중 합리화하고 있다면 이 책은 이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