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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리뷰]「먹이+등」展,먹이다툼의 역사 엿보기

입력 | 1998-02-23 08:47:00


인류사를 ‘먹이다툼의 역사’라고 하면 지나치게 비관적일까. 하지만 새로운 밀레니엄을 코앞에 두고도 먹이를 둘러싼 경쟁은 전쟁 폭동 등으로 이름만 바꾸었지 언제나 ‘진행형’이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의‘먹이+등’. 이순주 이소미 김수련 정서영 등 독일에서 미술수업을 받은 30대 중후반 여성작가4명의 관심사는 먹이의 ‘순환(Feedback)’. ‘먹이(Feed)’와 ‘등(Back)’은 인류를 지탱해온 물질과 정신을 상징한다. 이소미의 설치작품 ‘건축적 경작’. 천과 스펀지를 이용해 층층이 쌓아올린 구릉은 궁벽한 산골의 계단식 논을 연상시키고 그 사이로 부처의 미소가 떠오른다. 젖소가 풀을 뜯거나 콤바인이 요동치면서 먹이를 마구 토해내는 서구식 풍경이 아니다. 한뼘의 땅이라도 늘려 생존하려고 발버둥쳐온 인간의 모습, 지극히 한국적 생존양식이다. 먹이다툼으로 발버둥치는 이 땅과 해탈로 평화로운 저편 세계의 윤회이리라. 유전자 복제로 탄생한 양의 이름을 딴 이순주의 ‘돌리’. 6명의 다른 여자는 헤어스타일은 물론 표정까지 닮았다. 또 007가방과 총을 들고 등을 구부린 채 먹이 사냥터에 내몰린 또다른 6명의 남자는 곧 사라질 것처럼 불안전한 형태. 과학은 먹이의 양을 늘리지만 개성의 상실로 비극의 서막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김수련의 정물화와 정서영의 작품은 같은 테마를 다루면서도 또다른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네컷 만화를 연상시키는 드로잉에서부터 설치작품까지 여러 장르의 작품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3월1일까지. 02―720―5114 〈김갑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