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노벨문학상 수상자 다리오 포의 대표작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극단 산울림)는 미친 척 하지 않으면 훔쳐볼 수 없는 현대사회의 은폐구조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다. 이 연극은 86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군고문치사사건을 연상시킨다. 또 1921년 미국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했다. 그래서 은연중에 비치는 메시지가 가볍지 않다. 소수 권력집단의 정보조작을 통한 진실은폐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화의 허상속에서 대중의 정보소외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그 의미는 더욱 뚜렷이 다가온다. 대학강사 의사 등 갖가지 신분사칭죄로 체포된 ‘미치광이’ 어릿광대(안석환 분). 그는 진단서까지 갖추고 ‘공인된 정신병자’로 자처한다. 정신병만이 돈없고 ‘빽없는’ 민초가 경찰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 조사를 받는 입장인 그가 해박한 법률지식과 특권층에 대한 독한 냉소로 오히려 수사관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또 수사기관의 심장부를 유린하듯 고등법원판사 수사관 등으로 변장, 결국 자살로 위장된 무정부주의자의 고문치사사건을 하나하나 폭로해나간다. 경찰간부들이 얼떨결에 죄상을 자백하는 장면 등에서 소재의 무거움을 극복하는 포 특유의 재간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채윤일 연출. 3월15일까지 화 수 목 오후7시, 금 토 공휴일 오후3시 7시, 일요일 오후3시(월 공연없음) 서울 신촌 산울림소극장. 02―334―5915 〈한정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