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관계인 이웃들도 한 집에 불이 나면 일단 양동이를 들고 불부터 끈다. 인도네시아 경제위기를 계기로 ‘해묵은 감정’을 풀고 화해의 손을 잡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꼭 그런 꼴이다. 고촉통(吳作棟)싱가포르총리는 지난주 말레이시아를 방문, 마하티르총리와 회담을 갖고 △인도네시아 경제위기 공동 대처방안 △지역통화 결제문제 △싱가포르에 대한 식수공급재개 등 현안을 논의했다. 회담 후 압둘라 바다위 말레이시아 외무장관은 “이제 양국 관계는 다시 정상화됐다”고 말했다.지난해 3월 말레이시아가 싱가포르와의 교류 중단을 선언, 30여년만에 최악의 국면을 맞았던 양국 관계가 회복되는 순간이었다. 이웃 대국인 인도네시아 경제위기를 지켜보며 “서로 으르렁거리다가는 공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두 나라의 화해를 촉진했다. 교류중단 선언 이후 양국은 외교관계는 유지해 왔지만 정부차원의 관급공사에 상대국 기업의 참여를 제외했고 정부간 접촉도 중단해 왔다. 65년 말레이시아연방에서 탈퇴한 이후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한 싱가포르의 우월감과 이에 대한 말레이시아의 질시, 그리고 2개 섬에 대한 영유권 분쟁 등이 얽혀 양국간의 감정은 미묘했었다. 그러나 교류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리콴유(李光耀)전싱가포르총리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 때문에 왔다.그는 말레이시아 조호르주로 도피한 싱가포르 야당지도자의 명예훼손 사건과 관련, 법정 진술에서 “말레이시아 조호르주는 총격사건과 강도로 악명높은 곳”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정부는 즉각 “국가에 대한 모욕”이라고 항의한 뒤 교류중단을 선언했었다. 〈강수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