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사항이 미국의 이해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미국은 이라크에 대해 단독 행동도 불사하겠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은 22일 이라크 유엔무기사찰과 관련,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이 이라크와 합의를 이끌어내기 몇시간 전 이렇게 공표했다. 무조건적인 사찰을 수용하라는 최종압박인 동시에 합의가 나오더라도 미국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아니나 다를까 유엔과 이라크의 합의가 발표되자 미국은 조금 특이한 이유를 들어 입장표명을 유보했다. 제임스 루빈 국무부대변인은 “바그다드와 워싱턴 간에 전화상태가 좋지 않아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아직 판단을 내릴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난총장은 이에 앞서 미국측에 합의사항을 통보했다고 밝혔기 때문에 미국의 미온적 반응에는 어떤 저의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미국은 최종적으로 합의사항을 추인하거나 거부하게 될 경우 이를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해 시간을 벌 필요가 있다. 또 이미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원수가 돼버린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타협한다는 것 자체를 갑자기 수용하기가 어렵다는 사정도 있을 것이다. 이라크가 순순히 무기사찰을 수용, 향후 초점이 사찰을 실시했을 때 대량파괴무기의 존재 여부로 옮겨갈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미국은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생화학무기 등 대량파괴무기를 발견했을 경우 당연히 미국의 강경노선은 정당성을 얻는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엔 국제사회에서 미국은 궁지에 몰리게 된다. 대통령궁에서 무기가 발견되지 않을 경우이라크가 다른 곳에 대량파괴무기를 옮겨놓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할 수 있으나 그만큼 미국의 입지는 약해진다. 빌 클린턴대통령이 일요일이었던 22일 오후 백악관 집무실을 떠나지 않고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 등과 전화통화를 하며 향후 대책에 부심한 것도 이라크의 사찰허용이 ‘작전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이같은 복잡한 상황때문이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