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시트콤」
KBS는 16일 ‘IMF위기 극복을 위한 신편성’을 시작하며 프로그램을 대폭 바꾸었다. 공영방송의 직분을 지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1주일 동안 지켜본 ‘신편성 프로그램’은 ‘공영성’과 ‘오락성’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쳐버릴 듯 어설퍼보인다. 신설 프로 가운데는 같은 방송사의 인기 프로와 케이블TV의 일부 코너를 모방한 듯한 대목도 간혹 눈에 띄지만 ‘나의 사랑 나의 가족’‘고승덕 김미화의 경제연구소’ 등 그런대로 기대해볼 만한 프로들도 있다. 그러나 ‘IMF위기 극복을 위한 새로운 프로’를 내세우면서도 치밀한 기획과 구성보다는 동요, 서민가정,‘그 때를 아십니까’식의 복고풍 이야깃감 등의 소재에서만 구하려고 하는 안일함이 두드러진다. ‘가요 톱10’의 대체프로로 선보인 ‘브라보 신세대’는 인기가수들에게 동요를 부르게 하거나 어설픈 콩트로 시간을 때웠고 ‘토요 시트콤―행복을 만들어 드립니다’는 택시운전사가 가장인 서민가정을 소재로 했을 뿐 지루한 말장난만 반복해 웃음도, 감동도 주지 못했다. 세 개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꾸민 ‘세바구니의 행복’도 60년대쯤의 배경에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 실직당한 아빠를 돕는 착한 아들, 착한 친구들, 착한 선생님 등 지나치게 시의에 맞춘 소재에만 연연해 정작 밀도있는 구성에는 실패했다는 느낌을 준다. 공영성 강화를 내세웠지만 시청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흔적도 여전히 남아있다.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에서는 연예인의 도전에 후원금을 걸고 성공하면 불우한 청소년에게 그 돈을 주는,‘슈퍼 선데이’의 한 코너를 그대로 이어받아 첫 순서로 내세웠다. 수혜자를 함께 출연시켜 마치 구걸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 코너의 운영방식이 이전부터 시청자들로부터 비난받아왔음을 감안한다면 ‘공영성 강화’의 구호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대목이다. KBS가 이처럼 어설픈 신편성 프로그램들을 배짱좋게 내놓게 된 데에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선 제작자들과 충분한 사전협의도 없이 일단 공영성 강화 선언부터 하고보는 고위층의 행태에 그 원인이 있다. 신편성 안이 발표된 직후 KBS PD들은 총회를 열고 ‘제작자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사장 한 사람의 독단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램 폐지, 충분한 연구와 논의 없이 이루어진 개편’이었다고 질타하는 성명서를 냈다. PD들의 항변처럼 공영성 강화가 ‘다른 방송사 눈치보기나 충성경쟁에서 비롯되는 일방적인 개편’으로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김희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