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린 25일 정오 무렵 서울 상도동 김영삼(金泳三·YS)전대통령의 사저(私邸).
40평 규모의 사저는 20여명의 손님들로 붐볐다. 김전대통령과 가신(家臣)출신 정치인, 청와대에 근무했던 수석비서관들이 오전 10시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가 한꺼번에 몰려온 것이다.
김기수(金基洙)전청와대수행실장 등 청와대 안살림을 맡았던 전직 실무 비서관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상도동 사람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러나 꼭 있어야 할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장학로(張學魯·48)전청와대 제1부속실장. YS의 ‘방귀소리’만 들어도 소화상태와 건강을 눈치챌 정도로 충직한 ‘마당쇠’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그는 이날부터 ‘전직 대통령’으로 신분이 바뀐 YS에게 어쩌면 가장 필요한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YS 재임중 부정축재로 구속된 장씨는 YS를 곁에서 모실 처지가 아니었다.
▼ 총선직전 터져나온 추문
장씨가 이날 상도동에 나타날 수 없었던 사연은 15대 총선을 20여일 앞둔 96년 3월2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아침 서울 여의도 국민회의 당사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YS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장실장의 비리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오전 8시경 정희경(鄭喜卿)선거대책위원회 공동의장이 3층 기자실에 나타났다. 정의장은 쉴새없이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침착하게 발표문을 읽어내려갔다.
“지난 2월초 장실장의 여성편력과 부정축재 혐의에 대한 진정을 받고 조사한 결과 장실장이 91년부터 동거하고 있는 김모여인과 그 오빠, 동생들 명의로 93년 이후 거액을 보험에 가입하고 부동산을 매입했으며 돈세탁을 거쳐 은행에 넣는 등 37억여원 상당의 부정축재를 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정의장은 이어 “김영삼대통령은 자기 혼자 깨끗하다고 큰소리를 칠 것이 아니라 가까운 주변부터 단속해야 할 것”이라며 YS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한푼도 안받는’ 사람을 지근(至近)에서 모시는 사람의 부정축재 의혹이 터져나온 것이었다. 사실로 밝혀지면 YS의 도덕성과 청렴성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임은 물론이었다.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미칠 폭발성도 만만찮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9시 출근시간 전까지만 해도 ‘사실무근’이라는 말을 흘렸다. 그러나 오전 10시가 넘어서면서 상황은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문종수(文鐘洙)청와대민정수석에게서 장실장의 수뢰의혹을 보고받은 YS가 진노(震怒)했기 때문이었다.
문수석은 곧바로 기자실에 내려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씨 등 2명의 전직 대통령도 구속한 마당에 청와대 비서관이라고 봐줄 이유가 있겠습니까. 만약 비리가 드러나면 당연히 법에 의해 처리될 것입니다. 이른 시일 안에 수사를 마쳐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그러면 YS는 왜 그렇게 진노했을까.
김기수 전수행실장의 설명.
“김대통령께서 분노한 것은 단순히 돈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부정축재도 나빴지만 더 큰 문제는 가정문제였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당시 국민회의 폭로내용을 전해듣고 학로가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린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내 밑에 있는 놈이 이렇게 못될 수가 있나’하고 생각한거죠. 대통령께서는 그날 오후 조용히 나를 불러 ‘기수, 자네 장군(君) 가정생활을 그렇게 몰랐나’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사실 장씨의 처지는 불우한 편이었다.
김전수행실장과 주변사람들에 따르면 장실장은 상도동 집사(執事)일을 시작하던 20여년 전부터 근육소실증으로 다리가 불편했다. 그는 상도동 근처 한의원에도 무수히 다녔지만 잘 낫지 않았다. 때로는 자신의 병을 비관해 상도동 골방에 처박혀 우는 모습이 목격된 적도 있었다.
상도동 가신 출신 인사의 설명.
“학로는 언젠가 초등학교 여선생하고 선을 본 적이 있습니다.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어요. 그런데 두번째 만나고 온 뒤 다시는 안 만나더군요. 열등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후 학로가 만날 수 있는 여자는 상도동 근처 다방과 음식점 등에서 일하는 여자가 고작이었죠. 몇년 후 학로는 다방에서 일하던 여자와 결혼한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말렸지만 학로가 고집을 부렸습니다. 학로는 그 여자와 몇년 못살고 헤어졌고 그것이 결국 비극의 씨앗이 된 겁니다.”
▼ 호주머니 많은 옷 입어
YS와 상도동 가신들의 관계는 92년 YS가 대통령에 당선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정치권과 기존 관료사회가 가신들이 청와대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도 전문성있는 테크노크라트가 대통령을 보좌해야 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가신들은 “쿠데타 등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통령 한분만 청와대로 들어가게 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반발했다.
다시 김전수행실장의 설명.
“대통령께서 처음 청와대에 들어가셨을 때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비서실 직원들 얼굴도 몰랐고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오죽했으면 청와대 들어가서 처음 한 말이 ‘기수야, 니 나 차 한잔 안주나’였겠습니까.”
결국 YS는 가신들을 데리고 청와대로 들어갔다. 국정을 움직이는 관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성과 합리성 투명성 등이다. 그러나 가신들은 이런 점이 부족했다. 이들은 이런 조건보다는 충성심과 의리로 험난한 시절을 지낸 사람들이었다.
이 ‘의리’의 틈을 비집고 무수한 사람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돈을 미끼로 각종 청탁을 했다. 그러나 가신들은 이를 쉽게 거부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오히려 즐기기까지 했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돈을 받으면 죄가 되는 공무원 신분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장실장도 예외일 수 없었다.
문민정권 초기에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비서관의 증언.
“야당 하던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수십년간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며 살아왔다는 사실입니다. 돈도 배경도 힘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죠. 문제는 처지가 뒤바뀌었을 때입니다. 신세를 베푼 사람들은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파리떼’로 변해 날아듭니다. 이것을 차단하지 못하면 같이 망하는 법인데 장실장의 경우가 바로 그랬습니다.”
청와대에 들어간 장실장은 사정(司正)의 서슬이 퍼런 때인데도 청와대 인근 호텔에서 기업인들을 자주 만나 청탁을 받고 돈을 챙겼다.
사정기관 고위간부의 설명.
“장실장이 기업인들을 자주 만난다는 소문이 있어 은밀히 알아봤더니 사실이더군요. 장실장은 점심시간에 광화문 부근의 코리아나, 프라자, 롯데호텔을 옮겨다니며 기업인들을 만나는 장면이 목격됐습니다. 그는 항상 호주머니가 많이 달린 잠바나 파카 등을 입고 나왔는데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것을 보면 호주머니가 두둑한 것이 목격되기도 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장실장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에 공무원 연수교육이라도 받았으면 그 정도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가신 출신들의 ‘뇌물 불감증’을 꼬집었다.
▼ 『YS는 무책임한 가장』
장실장의 타락에는 YS의 ‘통치철학’도 한몫 했다.
YS는 5,6공 당시 월계수회같은 사조직의 폐해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민주산악회’와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같은 자신의 사조직을 모두 해체하고 이들을 돌봐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청와대에 입성해 ‘출세한 가신’들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가신그룹 한 인사의 증언.
“YS는 대통령이 된 뒤 ‘과거단절’에 대한 결벽증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과거정권의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었죠. 그래서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과도 인연을 끊고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하소연할 데라고는 우리밖에 없었고 우리는 이들을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밥 사주고 용돈 주는 일도 모두 우리 가신들의 몫이 되고 말았죠. 어떻게 보면 YS는 꼿꼿하기는 하지만 무책임한 가장이었고 우리는 몸이라도 팔아 가족을 연명케 한 부정한 아낙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인사는 자신들을 ‘징검다리’에 비유했다. 주군이 물을 건널 때 자신들은 주군이 옷을 더럽히지 말라고 징검다리가 되었는데 그 징검다리 중에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흙탕물에 쓸려간 것이 장실장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YS에게는 그 징검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정국운영 과정에서 트레이드마크로 자랑해온 ‘개혁’과 ‘도덕성’에 가해진 흠집에만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문수석의 “장실장도 잘못이 드러나면 즉각 구속할 것”이라는 발표와 함께 검찰수사로 이어졌다.
〈양기대·이수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