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동 찍고 독립문 돌아 충정로에서 숨 한번 고르고….’
‘마라톤 맨’ 임채호씨(59·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는 늘 ‘달리는 인생’이다. 오죽하면 집에서 직장인 한국경제신문까지 뛰어서 출퇴근할까.
23년전 다리를 절 정도로 심했던 신경통을 치료하기 위해 시작한 마라톤이 이젠 그의 인생 자체가 되어 버렸다. 임씨는 요즘 29일 열릴 제69회 동아마라톤대회에 대비하느라 훈련에 여념이 없다.
이번 동아마라톤대회는 임씨의 1백18번째 42.195㎞ 풀코스 완주 경기가 될 전망. 기록도 웬만한 젊은이들은 저리 가라다. 전성기 때 최고기록은 3시간 27분 29초. 지금은 아무래도 옛날만큼은 못하지만 이번 동아마라톤에서도 4시간은 넘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는 ‘독기’를 숨기고 있다.
하기야 남들은 평생 한번도 뛰기 힘든 마라톤을 1백번 넘게 뛰었으니 그럴 수밖에…. ‘독종’임을 알려주는 일화도 많다.
88년 동네 친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통일로를 달리고 있었다. 때는 초여름인 6월이라 땀을 식히기 위해 찬물을 끼얹었다.
잠시 후 갑자기 다리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 주위에선 그만두라는 재촉이 들렸다. 하지만 그는 옷핀으로 계속 다리를 찔렀다. 그렇게 6시간의 완주는 끝났다. 그의 사전엔 결코 ‘포기’란 단어는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 하나, 96년 10월 춘천마라톤에서 1백4번째 완주를 마친 다음날 고향 면민회를 다녀오던 그는 성산대교에서 뺑소니 트럭에 치였다.
어둠이 깔린 밤, 강변 풀숲에 자전거와 함께 누워있던 그는 정신을 차리고 발을 질질 끌며 집으로 돌아갔다.가족의 손에 이끌려 병원으로 간 그는 왼쪽 다리뼈가 부러져 10주 진단을 받았다.
“그래도 마라톤을 했으니 7주만에 퇴원했지. 의사가 놀라더라고. 6개월은 무리하지 말랬지만 좀이 쑤셔 가만히 있을 수 있어야지….”
임씨는 아내 박순임씨(55)가 옆에 있어 마음놓고 달릴 수 있다. 지난해까지 하던 세탁소를 마라톤 한다고 폐업해 버렸는데도 아내는 말한마디 없이 묵묵히 그를 늘 뒷바라지 해주었다.
〈김호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