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살아갈 때 동시대인들은 함께 기뻐하고 아파하는 명제를 갖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1910년대 유럽인들에게는 일촉즉발 전쟁의 위기가, 조선인들에게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열강 앞에서 조국의 국권수호가 그것이었을 것이다.그때마다 개인은 개인대로, 집단은 집단대로 고통스러워하며 투쟁한다. 이러한 과정들을 역사라고 한다면, 인간은 이렇게 역사를 만들어오면서 총체적인 삶의 지평을 넓혀왔다.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의 영화 ‘아미스타드’는 우리에게 19세기 미국과 유럽, 아프리카인의 삶과 고통, 그리고 역사를 보여준다. 스페인의 노예선 아미스타드호에 흑인들의 반란이 일어나고, 이들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스페인에 맞서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법원이 재판을 벌인다. 흑인을 화물로 취급하는 사람들과 그에 반대되는 신념을 깨우치는 사람들, 그리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나아가 누가 뭐래도 자신들은 천부적으로 사람됨의 자유를 소유한 인간임을 처절하게 외치는 흑인들의 모습이 부각된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동시대의 명제에 나름대로 성실하게 반응했던 사람들을 통해 오늘까지 삶의 지평은 넓혀져왔다. 그 끝에는 역사발전의 목적인 인류의 행복이 있다. 그렇다면 오늘이라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명제는 무엇일까. 흑인 싱케이가 재판을 받으면서 아주 어렵게 조합해 낸 영어로 땀을 뻘뻘흘리며 이렇게 외치는 장면이 있다.
“기브 어스 프리(Give us free).”
자유를 잃고 처참하게 울부짖는 흑인들과 그들을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이런 소리를 들었다.
“기브 어스 러브(Give us love).”
오늘날 우리가 앓고 있는 명제는 다름아닌 사랑의 결핍이다.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각종 이기주의―개인 조직 집단 국가이기주의로 인하여 인권도 자유도 신음하고 있다. 치료가 절실하다.처방은 오직 하나, 사랑뿐이다. 지난 21년 동안 사랑의 결핍때문에 생기는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분들을 따뜻이 맞아들여 사랑해주는 꽃동네를 해오면서 사랑의 연수원을 함께 세워 운영하는 것도 사랑의 결핍을 치유하고 온국민에게 사랑을 가르쳐주고 싶어서였다. ‘아미스타드’의 앞날에 하느님의 축복을 빈다.
오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