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존경하는 분이 생명(生命)을 그렇게 풀이해 주셨다. “그건 생(生)에의 명령(命令)이야. 살아라, 하는 명령이지.” 단순하지만 힘찬 해석이었다. 그리고 그분은 덧붙여 말했다. “그러니까, 살 때까지 열심히 사는 거야. 명령을 내린 게 누구든.”
그러나 견디어 내기 힘든 시련이 올 땐 어떻게 하나. 그 명령이 듣기 싫어지면?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이레)가 내린 결론은 자명하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소극적인 의미에서 연명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책은 오히려 가장 적극적으로 위기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위기는 구체적으로 ‘암’을 가리킨다. 온갖 종류의 암에 걸렸던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어떻게 암을 이겨냈는지를 눈물겹게 증언하고 있다. 열 몇 살짜리 소년이 있는가 하면, 80세가 다 되어 가는 작가도 있다. 환자를 가족으로, 또 친구로 둔 사람들의 증언도 들어 있다. 책은 단순하지만 열정적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혜롭다. 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특별한 생을 살았을 것 같지 않은 소박한 사람들의 경험담은 진솔하고 아름답다.
‘암환자들의 증언’이라니? 틀림없이 칙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책은 어떤 책보다도 밝고 명랑하다. 그것은 생의 혹독한 경계를 돌파한 이 사람들이 프로이트적인 의미에서의 ‘유머’를 실체적인 방식으로 꿰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줄이 다 됐군. 매듭을 지어야지. 그 다음엔? 목에 걸고 잡아당길까? 아니, 나무에 걸어보자.’ 그리곤?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곤, 그―네―를―탄―다. 그것이 이 책의 근본적인 정신이다.
그러면 일종의 ‘암 개그’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 그렇지만은 않다. 이 책은 결국 아주 진지한 결론에로 우리를 데려간다. 고통은 인간에게 자기 자신을 발견하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이때의 ‘자신’이란 혼자 있는 이기적 자아가 아니라, 고통을 통해 타인들을 발견한 겸손한 자아이다. 고통은, 따라서 통로이다. 개인의 운명에서 종(種)의 운명으로 가는 통로, 또는 그네이다.
김정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