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통 한구석에 녹슨 열쇠가 있었어요. 꽃담이는 아빠 심부름으로 망치를 꺼내다가 열쇠를 발견했어요. “아빠, 이게 무슨 열쇠예요?”
아빠는 망치로 못을 꽝꽝 박으며 대답했어요. “글쎄, 아빠도 모르겠는데.” 아빠는 꽃담이가 들어 보인 열쇠를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방문 열쇠인가요?”
“꽃담아, 아빠는 지금 못을 박는 중이야. 아빠가 못을 박다가 손가락을 다쳐도 좋겠니?”
꽃담이는 엄마한테 갔어요. 엄마는 사다리 위에서 찬장 선반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엄마, 이 열쇠가 무슨 열쇠인지 알아요? 옷장 열쇠가 아닐까요?”
“꽃담아, 엄마를 방해하면 안돼. 엄마가 사다리에서 떨어져도 좋겠니?”
꽃담이는 오빠한테 갔어요. 오빠는 숙제를 하고 있었어요. “오빠, 이 열쇠가 무슨 열쇠인지 알아?”
“제발 나를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꼭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아야겠니?”
꽃담이는 화가 났어요. “칫, 좋아! 다들 이 열쇠에는 관심이 없단 말이지.” 그날 저녁 꽃담이는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았어요.
아빠가 꽃담이한테 말을 걸었어요. “수다쟁이 아가씨가 오늘은 왜 이렇게 말이 없지?” 엄마도 거들었어요. “토라진 모양인데, 무슨 일이 있었니?”
꽃담이는 화를 풀지 않았어요. “나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을거야. 평생동안!”
아빠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어요. “좋아. 그러면 지금부터 꽃담이의 궁금증을 풀어 주면 어떨까?” 엄마와 오빠도 좋다고 했어요. 먼저 오빠가 말했어요. “그 열쇠는 해적들이 숨겨 둔 보물 창고 열쇠일지도 몰라. 조상대대로 물려져 내려오다가 오늘 꽃담이가 찾아 낸 거야.”
엄마가 웃었어요. “아냐. 그건 우리가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집 화장실 열쇠가 틀림없어.”
아빠도 말했어요. “아냐, 아냐. 방금 생각났는데 그건 동물원 코뿔소 우리 열쇠야. 지난 봄에 동물원에 갔을 때 아빠가 몰래 훔쳐다 놓았지. 코뿔소를 다시 아프리카 밀림에다 풀어 주려고 말이야….”
사계절에서 펴낸 ‘쿨쿨 할아버지 잠 깬 날’.
어린이 책 최고의 베스트셀러 ‘반갑다, 논리야’의 작가 위기철씨. 그의 창작 동화집(사계절)에는 활짝 상상의 나래를 펴는 어린이들의 환한 세상이 펼쳐진다.
반복 구성으로 이야기의 ‘리듬감’을 살렸다. 다음에 이어질 줄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듯, 궁금증을 더하면서 책읽기의 맛을 푹 우려낸다. 순수한 창작동화이면서도 초등학교 저학년의 사고력 향상을 염두에 두고 씌어졌다.
앞머리에 담은 ‘녹슨 열쇠’와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거야’ ‘내가 하나 더 있었으면’ ‘달빛 때문에’. 아이들의 심리를 솔직하게 그려낸 생활동화가 제목만으로도 웃음을 머금게 한다.
뒷머리에 묶인 표제작 ‘쿨쿨 할아버지 잠 깬 날’과 ‘뱀 이야기’ ‘신기한 열매’. 환경과 자연의 소중함, 겸손의 미덕, 뉘우치고 거듭나는 삶을 생각하게 하는 동화다.
식구들은 저마다 신바람을 내며 말했어요. “아니에요. 그 열쇠는 비행기 조종석 열쇠예요. 우리 집 위로 날아가던 비행기에서 떨어졌을 거예요.”
“천만에! 그 열쇠는 용궁 열쇠야. 엄마가 요리를 하다가 생선 뱃속에서 찾아냈지.”
식구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니, 꽃담이는 입이 근질거려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깔깔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어요. “칫! 다들 엉터리야!”
아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어요. “아, 이제 알겠다! 그 열쇠는…”
식구들 모두 아빠를 쳐다보았어요. “바로 꽃담이의 ‘자물쇠 입’을 여는 열쇠야! 수다쟁이 아가씨가 마침내 입을 열었잖아?”
식구들 모두 “맞아, 맞아”하고 박수를 치며 웃었어요. 꽃담이도 하는 수 없이 따라 웃었어요.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