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밤. 어둠속에 불빛이 번뜩인다. 건물 거리 자동차 골목 주택가들이 불빛에 반사되어 모습을 드러낸다. 그속에 삶이 있다.
판화가 김승연(44·홍익대판화과교수). 도시의 야경을 주제로 판화작업을 해온 그가 개인전을 마련했다. 11∼2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
“30여점 준비했어요. 지금까지 해온 야경작업에 대해 나름대로 중간정리를 해보고 싶었어요.”
김승연이 지금까지 주로 그려온 밤풍경은 멀리서 본 원경. 하지만 이번 전시회에는 클로즈업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한다. 마치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편안하게 보는 것 같은 도시의 이모저모.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마주치는 사물들.
전봇대, 가로등, 가로등 불빛, 맨홀뚜껑, 광고판, 자동차번호판….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철대문 밑의 틈새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담에는 나무그림자가 걸려 있다. 옛건축물과 현대건축물의 대조도 눈에 띈다.
김승연의 작품은 세부적인 것까지 치밀하게 묘사하는 극사실주의. 작품들은 사진을 보는 것처럼 정밀하고 치밀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창틀이 보통보다 크거나 빛의 통로가 왜곡되는 등 작가의 의도적 손길이 적지 않다.
김승연은 “시대를 읽을 수 있는 현장성을 표현하는데 작업의 중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후에 누군가가 작품을 봤을 때 당시의 거리는 어땠고, 광고나 자동차는 어떤 종류가 많았는지 등을 알 수 있도록 한다는 설명이다.
80년대말 미국 뉴욕유학시절(뉴욕주립대대학원) 그는 뉴욕의 역사적인 건축물을 작품속에 많이 담았다. 모두 한낮풍경이었다.
90년대초 귀국한 후 그의 작품은 서울, 그것도 야간풍경으로 바뀌었다.
“서울이란 도시는 뉴욕처럼 계획적이지 못합니다. 도시계획이 많이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모든 것이 꼬불꼬불하고 복잡합니다. 이 복잡함은 밤이 되면 더욱 다양하게 변합니다. 삶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불빛 하나하나가 아직도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삶의 존재를 확인시켜줍니다.”
그의 동판화기법은 특이하다. 하얀바탕에 어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칠흑과 같은 어둠속에서 빛을 하나하나 찾아나가는 메조틴트(Mezzotint)기법이다.
그는 국제적인 판화전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판화비엔날레 차석상, 독일 국제판화트리엔날레 우수상, 미국 포틀랜드 국제판화전 미술관상, 일본 삿포로 판화비엔날레 후원자상…. 심사위원들은 한결같이 “가장 흔하고 주변적인 소재이면서도 오히려 신선하다”고 평했다. 02―734―0458
〈송영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