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김대중은 자신을 70대에 이르러서야 정계에 복귀한 드골에 비유한 적이 있었다. 김대중과 드골은 70대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보다 숙명적인 것은 두 지도자가 각기 자신의 조국이 백척간두에 섰을 때서야 비로소 국민의 부름을 받았다는 점이다. 드골은 2차 세계대전중 프랑스를 구한 해방자였으나 프랑스 국민은 야속하게도 그에게 대권을 맡기지 않았다. 프랑스인들이 다시 드골을 찾은 것은 1958년 식민지 알제리의 독립을 반대한 군부의 쿠데타 위협으로 프랑스 국운이 풍전등화(風前燈火)였을 때였다.
▼ 의전보다 내용에 비중을▼
한국 민주화의 화신인 김대중을 우리 국민이 이제서야 찾게 된 것은 그가 아니면 이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 처한 나라를 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공감대에서였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과 드골은 비슷한 운명을 지녔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프랑스 제5공화국을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드골대통령처럼 평가를 받으려면 우리 경제가 IMF체제를 빠른 시일 안에 극복, 새로운 도약의 궤도에 올라가도록 해야 한다.
김대중후보의 당선소식이 알려지자 유네스코(국제연합 교육 과학 문화기구) 지도부는 한국의 김대중을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와 함께 현 세계지도자 중 유네스코 이념을 가장 잘 구현하는 지도자라고 평했다. 즉 자유 민주주의 인권 관용 평화의 문화 창달과 교육 문화 과학에 대한 열정면에서 두 리더가 유네스코 이념의 상징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김대통령이 파리에 오는 기회가 있으면 유네스코에 한번 모시고 싶다는 희망도 피력했다. 뿐만 아니라 김대중대통령이 취임도 하기 전에 IMF체제에 기민하게 대처, 한국의 금융위기가 한 고비를 넘기자 국제여론은 그의 위기 관리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내실(內實)있는 정상외교를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는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고 있다. 그러나 정상외교는 보통 전문적 기술적 회담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의전적 측면이 많으므로 남발되어서도 안되고 전가의 보도가 될 수도 없다. 다만 국제사회에서 존경받고 인정받는 그런 국가원수라면 재임기간중 많은 정상외교를 펴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
보도에 의하면 김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6월로 연기되었다 한다. 첫 방미에 격식도 도외시할 수는 없겠으나 김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한마디로 경제 안보 중심의 정상외교라 할 수 있으므로 의전보다는 실질 내용 토의에 더욱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한미간 정상외교뿐만 아니라 향후 우리의 모든 외교는 외화(外華)보다는 내실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김대통령은 4월 런던에서 개최되는 아시아 유럽정상회의(ASEM)에도 참석한다. 한미간의 관계가 중요한 것만큼 우리는 유럽 아시아 정상회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99년 1월1일 출범할 유러(Euro)화의 국제적 위상이 미국 달러화와 쌍두체제를 이루어 갈 전망도 있고 유럽은 유럽대로 르네상스 이래 세계를 정신적으로 리드해오고 있으므로 유럽과의 관계 설정은 한국의 행동 반경을 넓히는데 그만큼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다.
▼ 「4월 ASEM」첫 시험대 ▼
유럽지도자들과의 회담 때는 프랑스 정치인들이 자신들과 미국 정치인들과의 대화를 ‘대학생과 중학생간의 대화’로 표현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유럽 지도자들과의 대화는 지적 수준을 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원수가 펼치는 정상외교를 국민이 불안감 없이 긍지를 가지고 바라보고 각국 지도자들이 김대통령을 만나보고 다른 지도자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경륜과 철학 식견을 느낀다면 그것 이상으로 큰 세일즈 외교가 없을 것이다.
양동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