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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이순원/뮤지컬 「명성황후」를 보고

입력 | 1998-03-10 08:12:00


그동안 뮤지컬 ‘명성황후’의 명성은 익히 들었다.

96년과 97년 초 국내에서 공연을 하고 지난해 여름 뮤지컬의 본고장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그곳 뮤지컬계의 화제를 모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만큼 뒤늦게 그 공연을 보는 입장에서 얼마간 미리 감동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겠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자면 역사적 인물로 명성황후에 대해 좋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체 어느 정도의 공연이기에 그 난리였을까 하는 마음 또한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랬다.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장면을 담은 영상과 함께 막이 오를 때부터 미우라에게 시해된 명성황후가 부활하듯 떨쳐 일어나 험난한 시대의 나라와 백성을 위해 그 혼마저 불사르듯 ‘백성이여, 일어나라’고 외치는 맺음막까지 뮤지컬은 감동 그 자체였다.

뉴욕공연을 본 백남준은 ‘바그너의 그랜드 오페라처럼 웅장한 음악의 감동’을 말했지만 내겐 그 음악보다 웅장하게 느껴지는 것이 예술로 보여주는, 아니 예술과 하나가 된 우리의 역사와 그런 험난한 시대에 더욱 강해지는 우리 민족혼의 표현이었다.

꼭 1백년 전의 사건을 다룬 대하드라마와도 같은 뮤지컬을 보며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그 1백년간 문명의 발전속도는 바로 어제가 옛날처럼 느껴질 만큼 눈부신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떻게 그때와 지금이 이렇게도 꼭 같은지. 그래서 무대 저편에서 부활하듯 일어선 우리의 마지막 황후가 한발한발 힘차게 발을 구르며 무대 앞으로 다가오며 백성과 함께 부르는 마지막 합창의 감동이 더 컸던 것인지 모르겠다. 거기에다 뮤지컬 본고장 사람들조차 혀를 내둘렀다는 이중회전무대의 활용 또한 그것 자체로 예술이라고 부를 만큼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저마다 역을 맡은 배우들이 인사를 하고 다시 막으로 무대를 가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그렇게 그 자리에 서서 박수를 쳤을 것이다.

내 눈에도 눈물이 나왔다. 이런 뮤지컬 하나, 그 1백년에 우리가 가진 것이다. 영원하라, 황후의 혼이여.

19일까지 화 목 오후7시반 수 금 토 일 오후3시 7시반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446―7770

이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