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티(QWERTY)경제학’이라는 말이 있다.
QWERTY는 영문 타자기의 글자 배열 순서. 19세기에 만들어진 QWERTY자판은 손가락 운동의 효율성 측면에서 가장 적합한 배열은 아니다. 그러나 더 효율적인 배열로 바뀔 전망은 없다.
타자를 배우는 사람은 기존의 모든 자판이 QWERTY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을 배운다. 생산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이 자판을 쓰기 때문에 계속 이 자판 제품을 만든다. 선점자의 유리함이다. 비슷한 원리로 영화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할리우드 근처에 모인다. 금융산업 관련자는 월가에, 정보통신 전문가는 실리콘 밸리에 각각 모여든다. 사람 자원 정보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국제무역에서도 비슷한 ‘고정’현상이 벌어진다. 인도네시아가 고무를,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를 수출하는 것은 고정현상과 관계 없지만 미국이 비행기를, 한국이 철강을 수출하는 것은 고정현상이다.
비행기 생산에는 대규모 시설투자와 고도의 기술 및 엔지니어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비행기 생산관련 자원이나 기술이 미국의 내재적 특성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비행기 제작에서 미국이 주도적인 위치를 선점했기 때문에 관련지식과 기술이 누적됐을 뿐이다. 호주에서 철광석을 수입해 다시 호주로 강판을 수출하는 한국처럼 국제적인 경쟁우위가 ‘스스로 강화되는’ 산업이 많다. 유리한 순환이 창출되는 것이다. QWERTY원리다. 이를 무역정책에 응용하면 정부가 고부가가치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전략산업 육성론’이 된다. 정부개입을 반대하는 자유주의와 맞서는 이론이다.
QWERTY경제학이란 말은 80년대초 미국 스탠퍼드대 폴 데이비드 교수가 창안했다.
〈허승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