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의원회관에서 ‘고스톱 도박’을 했다는 사실이 보도된 12일 정치권은 몹시 술렁거렸다.
고스톱 파문이 한나라당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함으로써 총리임명동의 문제로 팽팽하게 맞서온 여야간 힘의 균형을 깰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 이 사건이 정계개편의 촉진제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는 성급한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국회 의원회관 주변에서는 거론된 6명의 의원 말고도 상습 도박멤버가 7,8명은 더 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특히 지난해 정기국회 때는 여야의원들이 한나라당 K의원 방에서 정기적으로 마작판을 벌였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사정당국도 고스톱 파문의 여파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사정당국은 이날 언론에 거론된 S,S,L,K,Y,B의원 등의 실명을 확인하며 ‘도박장’을 제공한 의원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려고 애썼다. 사실상 내사에 착수한 셈이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국가가 생사의 기로에 있는 마당에 의원회관에서 고스톱이 웬말이냐”면서도 “당장 수사를 할 경우 정치보복이라는 야권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여론의 흐름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권의 분위기가 모두 연성(軟性)인 것만은 아니다. 당장 수사에 착수하지는 않더라도 야권을 압박할 또 하나의 카드로 갖고 있겠다는 인상이 짙다. 또 고스톱 파문을 계기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좀더 강력하게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당혹해 하면서도 가급적 이번 파문이 확대되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다. 이날 오전 주요당직자회의가 끝난 뒤 장광근(張光根)부대변인은 “회의에서 고스톱 얘기가 나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절 안나왔다”며 답변을 흐렸다.
한나라당은 그렇지 않아도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고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마당에 이 문제로 당이 더욱 곤경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한 당직자는 “꼬여있는 정치권에 대한 여론의 질책이 적잖은 마당에 거액을 놓고 고스톱을 쳤다면 신중치 못한 처신”이라고 개탄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이번 파문이 정치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을 부담스러워 했다. 이날 열린 국민회의 간부간담회에서도 그같은 우려가 주조를 이뤘다. 그때문인지 한나라당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은 삼갔다.
자민련은 이번 사건이 총리인준 무산에 따른 수세정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기대감을 표시하면서도 역시 성명이나 논평은 내지 않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는 이날 ‘국회의원 고스톱 파문’과 관련, 국회와 한나라당에 서한을 보내 “국회는 윤리특별위원회를 즉각 소집해 상습도박 여부를 확인, 사실일 경우 엄중히 사법처리하라”고 촉구했다.
〈윤영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