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뮬라원(F1) 호주그랑프리가 열리기 하루 전인 4일밤 홍콩국제공항. F1의 열기는 이미 이곳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홍콩에서 멜버른시까지 거리는 무려 8천㎞. 하지만 공항 곳곳은 자국기와 응원팀 깃발을 든 유럽등지에서 온 극성팬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케세이 패시픽이 매일 홍콩에서 멜버른까지 논스톱 운항하는 등 홍콩이 동남아와 오세아니아주로 가는 길목이기 때문.
멜버른시가 속해있는 호주 빅토리아주 관광청의 통계에 따르면 대회가 열린 5일부터 8일사이 선수 스태프 등 대회관계자 4천5백명, 취재진 6천명을 비롯해 해외에서 6만여명이 호주를 찾았다.
결승전이 열린 8일 경주장 공식 입장객이 20만명 정도이니까 전체 관중의 30% 정도가 해외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온 단체관광객. 유럽에서는 F1을 능가하는 인기종목으로 축구가 있을 뿐이다.
이들이 장거리여행을 마다않고 경기장을 찾는 첫번째 이유는 경주차가 내는 굉음의 매력 때문. 경주차 한대가 내는 소리는 전투기와 엇비슷하다. 결승 출발선에서 23대의 경주차가 내는 소리는 F1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다. 경기장 반경 5㎞ 내에서도 경주차 소리가 들릴 정도.
이 때문에 F1은 선수가 아닌 관중에게도 장비착용을 요구하는 유일한 스포츠다. 이른바 ‘생존장비’로 불리는 귀마개가 바로 그것. 시속 3백㎞를 넘는 속도로 굉음을 내며 달리는 경주차를 보면 관중들은 자기도 모르게 흥분에 빠지게 된다. 심한 규제 속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에게 F1은 일탈의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또 F1 인기비결 중 하나는 국가 대항전. 경주차나 팀이 어느나라 것인지는 상관없다. 오로지 드라이버의 국적만이 인정될 뿐이다. 이번 대회 시상식에서도 우승자인 미카 하키넨의 조국 핀란드 국가가 울려퍼졌다. 일본인들이 열광하는 이유도 전체 23명밖에 안되는 F1드라이버 중에 일본출신 선수가 2명이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페라리팀의 미하엘 슈마허(독일)는 월드 스타. 전체관중의 30% 가량이 그의 팬일 정도로 그의 인기는 대단하다. 이번 대회에서도 페라리의 상징인 붉은 바탕에 그려진 황금말 깃발이 경기장을 뒤덮었다. 간혹 작년 챔피언 자크 빌르뇌브를 응원하는 캐나다 깃발이나 이탈리아, 핀란드 깃발도 눈에 띄었지만….
그러나 이것도 잠시일 뿐이다. 우승자가 결정된 결승전 이후 멜버른시내엔 핀란드깃발을 든 사람들만이 기세등등하게 행진을 벌였다.
〈멜버른〓전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