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와 자민련의 민생안정대책위원회는 단순 경미한 범죄에 한해 경찰에 독자적 수사권과 공소권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 대상으로 상해 폭행 과실치사상 강절도 교통사고사범 등을 들었다. 이들 범죄는 전체 형사사건의 57%에 해당된다고 한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수사를 위해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취지인 것 같다.
경찰에 독자적인 수사권을 주는 문제는 과거에도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했었다. 일종의 ‘경찰 숙원사업’인 셈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집권당의 대통령선거 공약인데다 자치경찰제 도입문제와 연계돼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양상이 다르다. 더구나 공소권까지 경찰에 주겠다는 것은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에 대한 중대한 예외가 된다는 점에서 격렬한 논쟁이 예상된다. 수사지휘권을 갖고 있는 검찰은 당연히 반발하고 있으나 경찰측도 만만치 않은 기세여서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
양당의 민생안정대책위와 경찰의 주장에는 수긍할 만한 측면이 있다. 대다수의 사건은 경찰이 수사한 뒤 검찰이 재조사하기 때문에 낭비적 요소가 적지 않다. 검찰이 신속한 사건처리에 걸림돌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피의자 입장에서도 똑같은 조사를 두번 받으려면 여간 괴롭지 않을 것이다. 경찰의 수준도 높아졌고 자체 수사간부의 지휘감독을 받기 때문에 사건처리를 둘러싼 말썽의 소지도 적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수사권 이양대상으로 잡고 있는 상해 폭행 교통사고 등은 당사자간에 다툼이 많은 범죄다. 이들 범죄는 어떤 사건보다도 재량의 여지가 많아 자칫 억울한 당사자가 생길 우려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재산범죄보다 이런 신체상의 범죄를 무거운 범죄로 볼 수도 있다. 어떤 기준으로 이를 경찰에 완전히 맡겨도 좋을 ‘단순 경미한 범죄’로 보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들 범죄에 대한 공소권을 경찰에 주고 검찰은 법정에서 공소유지만 맡게 한다는 착상도 비합리적이다. 수사과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은 검찰에 공소유지 책임을 맡기는 것은 일관성이 없고 효과적이지도 않다. 형식적인 공소유지에 그쳐 국가형벌권 행사에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검사의 지휘감독을 배제하면 신속한 사건처리는 가능할지 모르나 공정한 처리와 인권이 희생될 소지도 있다.
특히 자치경찰제가 도입되면 지역간의 사건처리 불균형을 막기 위해 검찰이 법집행의 형평성과 통일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수사권 일부이양은 충분한 여론수렴을 거쳐 국민에게 이익되는 방향으로 신중히 결정할 문제다. 집권당의 대선공약이라고 해서 서두르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