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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자 노트]고미석/「봄」은 마음속에 있다

입력 | 1998-03-14 20:56:00


한달전 남편이 실직한 친구가 전화를 해왔다. 조심스런 안부를 나눈 끝에 초등학교 3학년생 딸 얘기를 들려주었다. “새 학기가 되면 교과서를 비닐로 싸주었는데 올해는 아무 정신없이 지나쳐버렸어. 하루는 무심코 책가방을 들여다보니 아이가 지난해 사용했던 비닐을 벗겨 책을 싸두었지, 뭐야. 물어보니 조금이나마 아껴야 할 것 같아서라고 대답하더군.”

예년과 달리 ‘부모님께 부담드리기 싫다’며 일부러 임원 선거에 안나선 아이들도 많다고 한다. 철없는 아이들도 이렇게 단단히 마음의 준비가 돼있는데 어른들이 더 허둥대는 것 같다. 차가 다시 밀리고 유흥가는 번잡해진다는 소식. 가장의 자살 혹은 자녀동반 자살이 반복되는 현실. 그 대조적 풍경이 서글프다.

우리는 너무 빨리 ‘될대로 되라’는 좌절과 절망의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있다. 힘들면 힘든 대로 묵묵히 앞을 보며 삶을 이어가는 일은 소중하다. 이 살얼음판 같은 시대의 화두는 ‘자중자애(自重自愛)’가 아닐는지.

큰 시련이 닥쳤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다. 삶의 목표는 달라질 수 있다. 미국작가 에머슨의 말처럼. ‘종종 웃으며 많이 사랑하는 것. 아이들의 사랑을 얻는 것. 정직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거짓된 친구의 배신을 참아내는 것.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아내는 것.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일이든 채마밭을 가꾸는 일이든 사회환경을 건강하게 하는 일이든,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것. 당신이 살아 있음으로 해서 한 사람의 삶이라도 살기가 수월해졌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성공이다.’

마음먹기 달렸다. 어느 시대, 어떤 상황이든 사람은 저마다 ‘괴로움의 창고’를 가지고 있다. 산다는 건 고통을 피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우리 앞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고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