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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話 문민정부(26)]김재순의 정치역정

입력 | 1998-03-16 10:30:00


40년에 걸쳐 정치활동을 해온 김재순(金在淳)전국회의장은 정치사의 고비마다 시련을 겪었다.

그는 6·25 당시 부산에서 서울대 총학생회장 겸 전시연합대학 총학생회장으로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의 ‘개헌파동’에 반대하다 3개월간 첫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이 옥고는 신익희(申翼熙) 장면(張勉) 조봉암(曺奉岩)씨 등 정계원로들의 ‘귀여움’을 받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60년 4·19혁명 직후 실시된 5대 총선에서 당선된 그는 김영삼(金泳三) 박준규(朴浚圭)의원과 의기투합했다. 당시 민주당 구파인 김영삼 박준규의원이 소장 정치인들로 구성된 ‘청조회(靑潮會)’로 기세를 올리자, 신파였던 김재순의원도 이철승(李哲承)의원 등과 함께 ‘신풍회(新風會)’를 결성해 당내 발언권을 강화했다.

그 결과 김재순의원은 장면정부의 재무부 정무차관으로 발탁됐으나 5·16쿠데타 직후 6개월 동안 다시 투옥되는 이유가 됐다.

5·16 이후 김전의장은 김종필(金鍾泌·JP)씨의 안내로 박준규씨와 함께 공화당에 합류했다.

그러나 공화당대변인 국회상공위원장 재경위원장 원내총무로 승승장구하던 김전의장은 유신 직후인 73년 JP계로 찍혀 공천에서 탈락한 뒤 전국구인 유정회 의원이 됐지만 쇼크로 쓰러져 5년 동안 병상생활을 했다.

유신 직후 사실상 정계를 은퇴한 김전의장은 잡지사 ‘샘터’ 운영에 전념하다 노태우(盧泰愚)정부가 들어선 88년 국회의장으로 재기했다.

그러나 그는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시 정치무대에서 물러나야 했다.

〈김창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