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된 안기부 해외조사실 이대성실장이 국민회의 정대철(鄭大哲)부총재에게 전달했다는 ‘극비문서’가 정치권에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안기부 및 구여권의 대북커넥션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이 문서의 내용중 일부가 17일 발행된 주간 ‘내일신문’에 보도되면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내일신문 보도내용의 핵심은 한나라당 정재문(鄭在文)의원이 대선전 중국 베이징(北京)의 한 호텔에서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안병수(安炳洙)위원장 대리에게 3백60만달러를 건네주고 ‘북풍’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만일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한나라당이 이회창(李會昌)후보의 당선을 위해 북한측과 밀거래를 했다는 것이 된다. 확인될 경우에는 사법처리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국기(國基)를 뒤흔든 미증유의 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
내일신문 보도내용의 요지는 이렇다. 정의원은 지난해 11월20일 베이징의 한 호텔에서 3백60만달러가 든 것으로 보이는 돈가방을 북한 조평통 안위원장대리에게 전달하며 “북풍을 일으켜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 이에 대해 북한 김정일(金正日)총비서는 “확실한 대답을 해줄 수 없다”는 유보적인 답변을 전했다. 김총비서의 답변은 조평통 안위원장대리와 전금철(全今哲)부위원장이 얻어냈다.
이 문건에는 당시 여야 대선후보들에 대한 김총비서의 평가도 들어 있다. 이인제(李仁濟)후보에 대해서는 “젊은 애라 다루기 좋다”고 평가했고 김대중(金大中)후보에 대해서는 “노회해서 다루기 어렵다”고 했다는 것.
96년 4·11총선에 대한 내용도 들어있다. “총선때 판문점에서 시위를 했듯이 하면 꼼짝못할 것이다”고 돼 있다. 이를 유추해석해 보면 지난 총선 직전에 발생한 북한군의 비무장지대 무력시위도 남한 권력층의 요청에 따라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고 대선에서 또한번 같은 효과를 노렸을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다.
이밖에도 “국민회의측이 너무 빠끔하게 대처해 제대로 안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공작을 하려해도 국민회의측이 사전에 정보를 입수, 선수를 치는 바람에 제대로 공작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실장이 정부총재에게 전달한 2백여쪽 분량의 이 극비문서는 96년부터 올 2월까지 여러가지의 대북접촉동향보고서를 묶은 것으로 △안기부와 구여권의 북한측 접촉내용 △안기부의 북풍공작관련 보고서철 △각종 정보철 △북한 고위인사들의 대선관(大選觀)등이 들어 있다.
이 문건은 또 김대중대통령을 겨냥한 김대통령의 대북인사 접촉설 등도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반인들은 내용을 식별하기 어려운 각종 기호와 문자 등이 들어있어 정보기관이 극비리에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궁금한 대목은 이실장이 검찰소환 직전 어떤 목적으로 이 문건을 정부총재에게 전달했느냐 하는 것. 여기에는 몇가지 해석이 있다.
먼저 상부의 지시로 북풍공작을 벌였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이실장 자신의 책임을 줄이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또 안기부보다는 구여권이 북풍공작을 주도했다는 점과 안기부는 북풍공작 음모를 사전에 탐지해서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물증’으로 서류를 넘겨줬을 가능성도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김대통령에게 불리한 내용이 들어있는 문서를 공개함으로써 여권의 수사의지를 위축시켜보려는 의도도 들어있지 않았겠느냐는 해석도 하고 있다.
〈윤영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