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가난한 시골 살림에 소를 팔아 자식을 대처로 유학을 보냈기에 대학을 상아탑이 아니라 우골탑이라 불렀던 것이다.
농사가 전업이던 60년대 소는 봄의 쟁기질부터 추수철 나락 운반까지 농부들이 몸으로 때워야 할 중노동을 도맡아 하는, 없어서는 안될 가축이었다. 또한 혼례나 상례, 급전이 필요할 때를 대비한 농가의 유일한 재산 목록 1호였다. 그런 소를 내다판 날은 남정네들은 대개 술에 취했고 아낙네는 울며 치맛자락을 훔치기 일쑤였다.
그 소 한 마리가 밑천이 돼 우리 경제는 급속히 발전했다. 자원이나 자본이 전무했던 초기 산업화 단계에서 오직 고등교육을 받은 양질의 노동력만이 수입대체형 산업과 수출주도형 공업화를 가능케 하는 자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보릿고개가 있던 그 어려운 시절에도 우리는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는 기업 경영에 수많은 과제를 부여했다. 그 가운데서도 저성장 시대에 맞는 투자 조정이 당장 해결해야 할 발등의 불로 대두되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올해 투자계획을 마련했다가 전면 폐지하고 새롭게 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미 핵심적이고 수익성이 보장된 사업을 제외하고 대부분 투자를 보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 경쟁국 항공기산업 급성장 ▼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문제는 꼭 필요한 투자마저 위축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가 심각한 무역적자를 내고 있는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는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 항공기 산업의 경우 아직도 규모의 단위에 이르지 못하는 수준이다. 국가별로 항공기 산업의 매출액을 비교해보면 미국의 항공기 산업은 우리에 비해 매출액 규모가 1백66배 이상 크며 영국 프랑스의 경우 매출액이 20배 이상, 일본도 우리에 비해 10배 이상 크다.
특히 대만 이스라엘 인도네시아 멕시코 브라질 등에 비해서도 국내 항공기 산업의 매출액이 적은데 이들 국가는 그동안 정부의 강력한 육성 전략에 힘입어 항공기 산업이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대만의 경우 이미 1988년에 초음속 전투기인 IDF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그 기술력을 과시하였으며 인도네시아는 1976년 국영회사인 IPTN을 설립한 이후 국제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60∼70석급의 N250 중형 항공기를 독자 개발하는 등 이미 신흥 항공기 생산국으로 급부상하였다.
▼ 「IMF이후」를 생각해야 ▼
우리의 경우 이 분야에서 단일 품목으로는 최대의 무역 적자를 보이고 있으며 기술수준 역시 열악한 상황이어서 향후 집중적인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다. 하루라도 빨리 IMF를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IMF 이후 나아가야 할 21세기를 고려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에서는 16∼18세기에 채택되었던 중상주의(重商主義)적 국가발전 전략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국가가 식민 시장을 개척하던 그 시절과 자국 상품을 해외에 내다팔기 위해 대통령이 세일즈맨으로 나서는 요즘 각국의 실리외교가 거의 유사하다는 점에서 이른바 신(新)중상주의 시대라 할 만하다.
이 험난한 경쟁의 파고(波高) 앞에 우리가 살아 남으려면 외제를 덜 쓰고 덜 입어 한푼의 달러라도 아끼는 자세도 중요하겠지만 장기적인 외화유출로 무역 역조를 가져오는 첨단산업과 기술에 대한 투자는 더욱 중요하다.
당장의 밭갈이도 급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농사 밑천인 소를 내다 팔던 농부의 심정처럼 IMF로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첨단 산업에 대한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용문(현대우주항공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