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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배인준/「코리안 스탠더드」와 外資유치

입력 | 1998-03-22 21:42:00


93년부터 4년간 도쿄특파원으로 일하면서 해마다 맞은 서울 손님 가운데 정부의 투자유치대표단이 있었다. 유치단은 도쿄 오사카등지에서 한국의 투자환경설명회를 가졌다. 특급호텔에서 파티도 열었다. 대표단은 “리셉션에 일본재계의 거물도 참석했고 통산성관리들과도 협력을 다짐했다”며 뿌듯한 표정을짓곤 했다.그러나 이들이 다녀간 뒤 큰 수확을 거뒀다는 후문은 듣기 어려웠다.

세계 각국이 외국자본의 직접투자를 유치한 규모는 96년의 경우 도착기준으로 3천5백억달러였다. 미국 8백50억달러, 중국 4백20억달러, 영국 3백억달러…. 한국은 세계 전체의 0.66%인 23억달러(신고기준 32억달러)에 그쳤다. 싱가포르(94억달러) 인도네시아(80억달러) 말레이시아(53억달러)에도 못미쳤다. 우리나라는 작년엔 신고기준으로 69억달러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투자환경이 좋아진 덕분이라고 보긴 어렵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외자유치를 거듭 강조한다. 외환위기를 넘기고 실업을 줄이며 성장을 지탱하기 위해 불가결하다는 인식이다. 이에 따라 외국인의 국내기업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과 토지취득이 곧 허용된다. 공장설립에 대한 ‘원스톱 행정서비스’도 추진된다.

▼ 『투자개선 설명회 「번드르」,내용 물어보면 우물쭈물 ▼

김영삼(金泳三)정부도 ‘원스톱서비스’를 선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옛 재정경제원은 작년판 경제백서에서 “외국인 투자절차가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문제는 실천이다. 공장 하나 지으려면 7,8개 관공서로부터 2,3년에 걸쳐 50가지가 넘는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 관청들은 손발이 맞지 않고 가는 곳마다 딴소리 해대기로 유명하다. 영어로 번역된 투자관련 법규집 하나 없다.

외국인들은‘발표따로,현장 따로’인 립서비스에 지쳐 있다.‘고스톱’은있어도‘원스톱’은 없다는 비아냥이다. 2년에 걸쳐 28억달러의 실리콘공장투자를 검토했던 미국 다우코닝사는 “투자자가 각부처를 일일이 찾아다녀야 하는 나라”라는 불평을 남기고 지난달 말레이시아로 떠났다.

요즘 정부와 경제단체들은 외국 상공인들에게 투자환경 개선을 설명하는 모임을 잇따라 열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 내용을 물으면 “잘 모르겠다. 곧 세부방안이 나올 것이다”는 답변뿐이다.

▼ 『외국자본 원활한 수혈위해 규제 풀고 이질감 해소해야』▼

세계적으로 외국인 직접투자의 4분의 3은 지분참여 또는 M&A 투자다. 4분의 1이 공장신설진출 같은 창업투자다. 우리로선 창업형 투자유치가 바람직하다. 일자리가 생기고 부가가치가 높은 장기성 투자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지분참여형은 갑작스러운 ‘치고 빠지기’에 따른 국부 유출의 우려가 있다. 또 M&A는 가차없는 정리해고로 고용불안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창업형 직접투자를 불러들이기에는 인허가 서비스, 땅값 임금 노사문제, 세금과 금융 인센티브 등 전반적으로 유치경쟁력이 떨어진다. 당장은 지분참여 및 M&A에 기대를 걸어야 할 형편이다. 그나마도 규제투성이 행정, 불투명한 기업회계, 고용조정에 대한 저항, 외국인에게 신경질적인 사회 분위기 등이 방해한다.

대외지향적 경제전략이 불가피한 마당에선 각부문의 폐쇄성과 맹목적 순혈(純血)의식을 털어내야만 한다. 열린 자세로 겸허 친절 정직하게 외국인을 대하고 외국자본의 믿음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것이 세계 속에서 사는 길이다. 외자유치는 기업과 금융기관, 그리고 행정 및 정치 서비스를 글로벌 스탠더드(세계표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배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