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우리 독자들에게 가장 서늘하게 다가왔던 이탈리아 소설은 아마도 이그나지오 실로네의 ‘빵과 포도주’였을 것이다.
공산주의 운동에 투신했으며 파시즘에 저항한 작가답게 그의 소설은 역사와 인간, 종교와 혁명, 사랑과 노동에 관한 진지한 성찰로 가득 차 있었다. 대지에 밀착한 삶을 영위하는 농부들을 지켜보는 한 젊은 혁명가의 시선을 통해 작가는 암울한 현실 상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오고야말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또렷이 아로새겨 놓았다.
그렇다면 90년대 우리 독자들을 매혹시킬 만한 이탈리아 작가로는 누가 있을까. 현대문학의 동향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흔히 환상문학으로 분류되는 다수의 작품을 남긴 거장 이탈로 칼비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실로네에서 칼비노로의 이동은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그람시에서 움베르토 에코로의 이동과 유사한, 우리 독자층의 ‘관심의 변화’를 압축해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펜의 다람쥐’라는 별명이 말해주듯이 칼비노의 소설은 경쾌하면서도 낙천적이다. 그의 소설은 지중해적 광명으로 가득차 있다. 그의 소설은 지적이면서도 움베르토 에코와 달리 과도한 박식함으로 읽는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다. 그는 동화라는 가장 단순한 형태 속에 인간과 사회를 둘러싼 다양한 논란거리를 담을 줄 아는 작가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제목이 말해주듯 중세를 배경으로 한 동화적 소설이다. 주인공 아질웁포는 육체 없이 오직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와 의식만으로 존재하는 환상적 존재이다. 존재는 의식에 선행한다는 고전적 명제가 전복당한 곳에 이 인물은 자리하고 있다.
작가는 그를 이슬람군대와 싸우는 전쟁터로 내보내기도 하고, 시체 파묻기나 식사 같은 일상적 행위에 임하게 하기도 하고, 그가 옛날 구해준 처녀의 순결성을 증명하기 위한 모험에 오르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존재와 비존재, 정신과 물질, 주관과 객관 같은 어려운 철학적 쟁점에 대해 하등 어렵지 않게 사유하게 된다. 여기에 권력자에 대한 풍자와 위선적인 경건주의에 대한 혐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찬양이 곁들여진다.
작가는 이 작품을 데오도라라는 수녀가 서술하는 것으로 설정해 소설 속에서 소설에 대해 성찰하는 메타소설의 방식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메타소설이 그렇듯이 글쓰는 이의 복잡한 자의식과 고뇌를 날 것으로 노출하기보다는 읽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유희 정신의 정수를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 웃으며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어느새 이야기의 끝에 도달하게 된다. 펜의 다람쥐와 벌인 한바탕의 숨바꼭질, 아마도 이것이 칼비노의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갖게 되는 감회일 것이다.
남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