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을 방문한 사람들의 첫마디는 한결같다. “몇평이에요? 평수보다 훨씬 넓어보이네.” 밋밋할 정도로 단출한 살림에 커튼마저 없으니 썰렁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남들이야 어떻든 나는 외양보다는 내실이 튼튼한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올봄은 유난스레 그런 나를 재촉한다. 이 집에 이사온지 2년이 넘었지만 친정 부모님은 한번도 찾지 않더니 올봄에 다녀가겠다는 전갈을 주셨다. 두분이 오시기 전에 최소한의 봄을 집안에 들여놓아야 한다는 숙제가 떨어진 것이다.
겨우내 베란다에서 고고함을 뽐내던 난들을 목욕시키듯 닦았다. 그리고 화분을 서너개 사다 햇빛드는 거실에 두개 놓고 신발장 거실장 위에 올려 놓았다. 하지만 이리저리 살펴봐도 화사한 분위기는 나지 않았다. 예전에 쓰던 커튼을 달까 하고 꺼냈으나 군색하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새로운 커튼만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생각으로 커튼집을 찾았다. 잠자리 날개처럼 하늘거리는 섬세한 커튼에 반했으나 가격에 주눅이 들어 도망치듯 커튼집을 빠져 나왔다. 커튼을 직접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곁눈질로 보아둔 커튼의 문양과 디자인을 외워 놓고 언젠가 본적이 있는 시장 귀퉁이의 천집을 찾아갔다.
1마에 2천5백원 하는 쪽빛 체크무늬의 천을 넉넉하게 끊었다. 집에 와서 천을 풀어놓으니 쪽빛 바다에 하얀 포말이 부서지듯 상큼한 느낌이 들었다. 천을 알맞게 잘라 한뜸한뜸 박음질을 해 나갔다. 남다르게 솜씨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사위가 어두워 가면서 요령이 붙었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한방 커튼이 완성됐다. 압정으로 원단을 고정시킨 뒤 레이스 천을 위에 덧대니 훨씬 근사했다.
거실은 물론 아이방까지도 그렇게 봄의 색채로 단장했다. 커튼은 커튼 집에서 맞춰야 한다는 고정된 사고의 틀을 깨뜨리니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 만족한듯 웃으며 농을 친다. “예전엔 미처 몰랐어. 이렇게 솜씨가 좋을 줄이야.”
오랜만에 딸네 집에 오실 친정 부모님께 궁상맞은 모습만은 면할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뿐하다.
현미자(전남 여수시 둔덕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