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보이지 않는다. ‘청년 실업자’들에게 봄은 온통 우울한 잿빛이다.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건국대 중앙도서관에서 화약류관리기사 자격증 공부를 하고있는 박보균(朴普均·26)씨. 강릉출신인 그는 지난해 11월말 치열한 경쟁을 뚫고 S건축사무소에 취직한 기쁨을 한달만에 ‘채용취소통보’와 함께 날리고 말았다.
명색이 대학을 졸업한 처지에 농사를 짓는 부모님들이 부쳐주는 돈에만 의존할 수 없었다. 그는 학교앞 자취방을 빼고 독서실로 숙소를 옮긴 뒤 ‘재산목록1호’인 컴퓨터를 중고시장에 내다팔아 생활비를 비축했다. 하루세끼를 모두 학교식당에서 해결하면서 5천원안팎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자격증을 딴다고 바로 취업이 되는 것도 아니다. “형, 졸업했는데 학교 왜 나와”라는 후배들의 물음에 머쓱한 웃음을 짓는 것도 이제는 정말 지쳤다. 박씨는 “자격시험만 끝나면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을 도와 농사나 짓고 싶은 심정”이라며 긴 한숨을 내쉰다.
H전자에 합격했다 입사가 무기연기된 김모씨(28·H대 경영학과). 입사를 포기할 수도 없고 다른 취업자리도 알아 볼 수 없는 ‘어정쩡한’상태에서 학교도서관을 오가고 있다. “영어책을 들여다보고 있다가도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의 얼굴이 떠오르면 담배만 피워물게 된다”며 시간의 사슬에 묶인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그나마 대학이라는 ‘비빌 언덕’도 없는 청년 실업자들은 더 막막하다. 지난해 1월 공군하사관으로 제대한 최대원(崔大元·28·서울 양천구 신월동)씨는 항공기정비기능사1급 자격증을 썩이고 집근처 도서관에서 9급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집안 식구 보기가 민망해 지난해 10월 공사장 막노동판에 나섰지만 3개월 후불제를 요구해 한달여만에 그만둔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다.
이래저래 대규모 취업난시대가 되면서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고단한’ 청년 실업자가 늘고 있다.
대학도서관 열람실은 예년에 비해 2시간정도 빨리 차기 시작했고 학교식당도 예년에 비해 이용객수가 10∼30%씩 증가했다. 일부 대학생은 담당교수의 묵인아래 취업이나 고시준비에 도움이 되는 강좌를 청강하기도 한다.
몇몇 대학은 졸업생들을 위한 열람실을 마련하거나 취업특별강좌를 수강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졸업생 대책’에 나서고 있다.연세대 재학생 곽지원(郭智媛·24·영문과4년)씨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선후배가 함께 고통을 나눠야하며 학교도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