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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민병욱/정계개편 공론화하라

입력 | 1998-03-31 19:53:00


결론부터 말해 정계개편은 공론화하는 것이 옳다.

“인위적 정계개편은 않겠다”거나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여권의 말은 어딘지 공작의 냄새가 난다. 한나라당이 “국회의원 물밑 빼가기를 중단하라”고 소리지르는 것도 정상적인 건 아니다. 당의 이념과 목표가 뚜렷하고 그간의 행태에도 자신이 있다면 그런 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

정계개편을 공론화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우선 현 정치구도로는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다는 게 입증됐다. 여든 야든 지금은 ‘경제 살리기’에 모든 역량을 쏟을 때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경제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타협과 견제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정당간 소모적 힘겨루기가 정치의 본령(本領)인 양 왜곡됐다. 이런 상태에서 경제회생에 전념하자는 구호는 공염불이다.

다음, 정치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길이다. 지금처럼 숨어서 군불때는 식의 정계개편 추진은 ‘정치인 당신네들의 일’이지 국민의 뜻과는 상관이 없다. 정계개편을 하려는 쪽은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밝혀 국민의 동의부터 얻어야 한다. 다른 당 사람을 한명 두명 빼가는 식보다 나라를 운영하기 위한 큰 그림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그것이 허락되면 공개적으로 개편을 추진해야 옳다.

정계개편을 해선 안된다는 측도 마찬가지다. 선거라는 공인된 절차를 밟아 정치구도를 바꿔야 한다는 원론만 주장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여론은 정계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거대야당이 보인 여러 행태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자신의 살을 깎고 있다는 것을 한나라당은 인정해야 한다. 원내 다수당으로서 국정에 협조할 일과 견제할 것을 가리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들이고 새로 태어날 각오를 보인다면 정계개편을 요구할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정계개편을 공론화하라는 것은 곧 정계개편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정치를 국민 가까이 끌고오자는 것이다. 밀실에서 인위적으로 정당별 숫자를 뜯어고치는 작업을 하지 말고 국민의 바람을 물어 정치를 개혁해 나가라는 말이다. 현재의 국회 의석구도를 다음 총선거 때까지 끌고 가서는 될 일이 없다는 게 국민 뜻이라면 개편해야 한다. 반면 현 체제를 건드리지 않은 채 다소 불편이 있더라도 대화와 타협을 정치의 근간으로 삼으라고 국민이 요구한다면 그를 따라야 한다. 열린 마당에서 문제를 논의하고 그 결과에 따라 추진하는 일에는 부작용이 있을 리 없다.

공론화 절차가 무시된 정계개편 물밑 다툼은 결국 또다른 정치불안만 배태할 뿐이다. 지금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빼가기’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의원들은 비위나 약점이 잡혀 당적을 바꿀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사실이라면 이는 정치를 다시 조롱거리로 만드는 일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심하게 말하면 ‘불륜’을 조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당은 ‘다수는 권력을 만들 수 있지만 권위를 만들 수는 없다’는 금언을 생각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약점을 잡아 머릿수를 늘리는 일이 잘하는 정치, 편한 정치로 연결될 수는 없다.

야당은 숫자의 우위만 믿고 나라의 형편은 생각지 않은 점을 반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96년 4·11총선 민의는 당시 신한국당에 1백39석밖에 주지 않은 점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여야가 바뀌어 세가 불리해지자 민의를 들먹이는 것도 공정한 처사가 아니다.

지금은 정계개편 화두를 국민 앞에 내놓고 바른 의견을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민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