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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이원홍/『北의 동생 살아 있겠지요』

입력 | 1998-04-01 20:04:00


“쌀이 귀해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그 무렵, 어머니께서는 38선을 넘으려던 저에게 흰 쌀밥으로 주먹밥 열덩어리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그 밥을 가방에 넣으며 3년이면 돌아오겠다고 떠나온 지가 50여년이 흘렀습니다….”

60세 이상의 영세 고령 이산가족들을 위해 마련된 ‘이산가족 주소 생사확인 지원금 신청’이 시작된 첫날인 1일 서울 중구 신당동 일천만 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사무실. 이른 아침부터 30초마다 1통씩 걸려오는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부모님과 조상들의 기일을 몰라 ‘여러 선조 신위’라는 문구를 써서 함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으리라고 마음의 각오를 하고 있지만 언제 돌아가셨는지 날짜라도 알아 제대로 된 제사 한번 지내는 게 소원입니다.”

46년 남하했다는 이영훈(李英勳·72)씨는 고향 신의주까지 가는 기차역을 줄줄이 외우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산가족 주소 생사확인 지원금’은 올 연말까지 이산가족의 신청을 접수, 제삼국을 통해 가족의 생사확인을 하게 한 뒤 소요 경비를 추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원대상은 영세민을 위주로 3백여명.

하지만 정작 이곳을 찾은 이산가족들은 지원 그 자체보다도 가족재회 가능성 여부에 온 신경이 쏠려있었다.

“죽지는 않았겠지요. 저도 살아있는데….”

30년 전 남편을 잃고 홀로 지내고 있는 평북 벽동 출신의 길농선(吉弄宣·89)씨는 동사무소에서 지원을 받는 영세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활고나 외로움보다는 북한의 동생 안부가 더욱 그리운듯 했다.

이날 사무실에는 또 65세 이상 고령 실향민이 북한의 ‘신변안전보장’을 포함한 초청장만 받으면 무조건 방북을 승인한다는 정부방침에 대한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이원홍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