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의 타격으로 중소기업의 도산이 한달에 3천여개사에 이르고 실업자는 날마다 1만명이나 증가하고 있는 심각한 상태라고 매스컴은 연일 보도하고 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 5천만원이면 살 수 있던 수입 원자재가 이제는 그 두배인 1억원에야 살 수 있게 되었다. 기업은 당연히 자금난에 시달리게 된다.
▼ 창구선 「꺾기」강요 여전 ▼
그러나 상당한 신용이 없는 한 은행에서 융자를 받을 수 없다. 간신히 융자를 받아서 사들인 자재로 공장을 가동한다 하더라도 적자 생산이 되거나 연20%라는 고금리 부담에 견딜 수 없어 부도를 낼 우려도 있다. 신용장을 개설할 수 없는 회사는 자재를 마련할 수 없어 당연히 기계를 가동시킬 수 없고 공장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전원 실업자신세가 된다.
정부가 경제발전의 핵심이 되는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저금리 자금을 몇천억원 방출했다’고 하지만 은행 창구에서는 정부 발표와는 반대로 융자조건이 아주 까다롭다.
예를 들어 정부가 금지하고 있는 ‘양건예금(兩建預金)’이 어느 은행에서나 공공연한 비밀로 실시되고 있다. 중소기업은 돈을 빌릴 때마다 의무적으로 은행으로부터 적금가입을 강요당한다. 융자를 받지 않으면 부도가 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차입금 금액에 따라 3년 만기의 적금이 정해진다. 융자받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적금에 들어야 한다. 1억원을 대출받았을 경우 3년만기 적금은 2년이 지날 무렵 4천5백만원 정도가 된다.
그 시점에서 실질차입금은 5천5백만원에 지나지 않는데 이자는 1억원에 대해 지불하게 된다. 적금의 이자는 차입금의 반 정도이므로 기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지불이자로 은행이 가로채는 셈이다. 이렇게 돼서는 말이 은행이지 중소기업의 약점을 이용한 고리대금업자나 다름없다.
은행에도 중소기업을 육성할 사회적인 의무가 있으나 본점으로부터 일정액의 예금 획득을 지시받으면 지점장은 그렇지 않아도 자금난에 허덕이는 거래처에 더 많은 적금을 강요한다. 이러한 은행의 융자자세로는 기업이 IMF위기에서 벗어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재 한국의 은행 융자구조 하에서는 중소기업육성은 ‘그림의 떡’인 것이다.
감독관청인 재정경제부는 은행과 유착해 법을 위반하는 양건예금을 오랜 관행으로 인정하고 책망하지 않는다. 정부는 기회있을 때마다 중소기업육성 운운하면서 애를 쓰지만 성과를 거두었다는 말은 들은 바 없다. 국정을 맡고 있는 의원들은 이런 기업 실상을 파악하지 않고 공염불만 외워댄다.
은행은 한국경제발전의 중심적 역할을 해내는 중소기업을 육성할 사회적 사명을 잊고 구태의연한 고리대금업자적 자세를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한국에서 지금까지 중소기업이 자라지 못했던 것은 은행의 융자자세에 문제가 있었다. 성장성이 있는 기업이라도 규모가 작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재벌편중의 융자자세였다. 한보 철강은 5조원의 발주공사에 대해 자기자본은 단지 1백10억원에 지나지 않았다.
▼ 「고리대금업」자세 버려야 ▼
전액 차입금으로 때우려는 사업계획은 원래 은행의 융자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주먹구구식 사업계획은 자연히 부정의 온상이 되게 마련이다. 한보철강 특혜융자 부정사건 때문에 은행장이 두사람이나 검찰에 소환됐다. 한보철강에 부정융자한 돈 정도라면 몇천개의 중소기업을 구제할 수 있고 도산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경제를 마비시키고 IMF사태를 초래하는데 은행의 책임이 크다.
은행은 거래하는 사람들을 울려가며 실질적으로 이익이 없는 은행간의 기말 예금잔액고 경쟁에 열을 올리는 일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정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