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가 지난 95년도에 펴낸 한국직업사전에는 우리나라에 총 1만1천5백37개의 직업이 있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이 사전을 보면 사람의 ‘먹고 사는 방법’의 다양함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존재하면서도 이 사전에는 빠져 있는 직종도 적지 않다. 예를 들면 국가보안이나 범죄관련 직종 등이 빠져 있다는 노동부의 말이다.
▼며칠 전 신문 사회면에 한국직업사전에는 없는 직종 하나가 소개됐다. ‘소매치기 야당’이란 직업이다. 그것도 직업이냐고 말할 사람이 있겠으나 경찰로부터 당당히 ‘월급’을 받고 있으니 직업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도 없다. 흔히 ‘야당’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전 현직 소매치기들. 소매치기세계를 훤히 꿰뚫고 있는 이들은 형사들에게 누가 소매치기인지를 ‘찍어’ 주고 그 대가로 1백만원 정도씩의 월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형사들과 ‘야당’과의 커넥션은 오래된 필요악(惡)이다. 수사인력이 부족한 경찰이 지하철같은 곳에서 범행하는 소매치기를 일일이 잡아내기란 사실 쉽지 않다. 특히 소매치기조직을 소탕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형사들에게 내부 제보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소매치기들에게는 형사보다 ‘야당’이 더 겁나는 존재가 돼버렸다. 그들의 입놀림에 따라 감옥행 여부가 결정나기 때문이다.
▼이번에 검거된 ‘강성웅파’ 일당 26명도 ‘야당’ 3명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주어 ‘입’을 막아온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5개월간 시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무려 18억원어치를 털어 왔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팀제’를 도입, 기업운영하듯 소매치기를 해 왔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서 소매치기들도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였다는 것인지, 씁쓸하기만 하다.
김차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