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선택에 의한 여야구도를 인위적으로 바꾸는데 반대하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 비생산적 정쟁이 오늘의 난국 수습에 장애가 된다는 점은 분명하나 그 이유만으로 민주정치의 원리를 훼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국민주권에 있고 선거는 국민의 뜻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민의 뜻이 오직 선거만을 통하여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정당이나 국회의원은 유권자의 뜻을 위임받아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국민의 뜻을 취합, 국정에 반영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정당이나 국회가 대의기능을 망각할 때 정계개편의 요구가 국민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이것은 과거의 밀실야합이나 공작정치 회유 협박에 의한 정계개편과는 다른 국민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명분을 갖는다.
정계개편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세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여야의 정당구조와 국민의 뜻 사이에 심대한 균열이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둘째, 정치인의 선택이 순수한 자유의지에 기초해야 한다. 공작이나 협박 이권거래와 같은 것이 개입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셋째, 해당 정치인은 이런 선택에 대하여 다음 선거에 심판을 받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현실적 차원에서도 논의의 여지가 있다. 6·25이래 최대 국난이라는 오늘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정치권이 힘을 보태기는커녕 다투기만 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국민이 환멸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의 실망과 배신감이 정계개편을 부추기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은 인위적 정계개편을 하지 않겠다는 민주주의원칙을 더욱 분명히 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국민주권의 자연스러운 표현으로서 정계개편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오늘의 야당이 얼마만큼 국민의 요구를 잘 청취하여 국정에 협력하는가에 달려있는 문제다. 국민과의 괴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정계개편이 명분을 얻어 빅뱅의 파열음을 낼 가능성에 근접해 있다.
한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