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기간중 김대중대통령은 법조인 수의 대폭 증원을 통해 법률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대한변협과 법무부로부터 사시정원 감축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법조인들은 법조인력이 과다공급되면 경쟁이 격화되고 법률서비스의 질이 더욱 저하될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전관예우 브로커 고액수임료 등 법조계내의 악성비리는 수십년간의 고질병이지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독과점화된 법률시장체제에서 일반 국민은 오직 고통과 불편만 느껴왔다. 그런데 아직도 과소경쟁하의 특권을 누리겠다는 발상이 법조계에 팽배해 있다. 이래서는 현재의 ‘후진국 사법’이 중진국 수준으로도 오를 수 없다.
우수 인력들이 사법시험에 몰려 인적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고 다른 분야의 교육은 물론 정규 법학교육의 황폐화를 초래하는 심각한 현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해결책은 정원감축의 길이 아니다. 정상적 교육과정을 도외시하고 합격증만 따면 높은 지위와 고수익이 보장된 제도하에서 인재집중은 막을 길이 없다. 사건처리과정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유지시켜 폭리를 취하는 제도적 틀을 바꾸어야 한다. 앞으로 법조인이 특권직종이 아니라 보통의 전문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꾸어야 인재집중 흐름이 조절될 것이다.
법조인 수의 적정성 여부는 공급자인 법조인이 아니라 수요자인 국민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일반 국민에게 법의 모습은 여전히 높은 문턱과 비싼 비용, 불량 서비스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치에 대한 믿음이 성장할 수 없다.
법조는 공익성과 전문성을 향한 서비스경쟁에 나서야 한다. 그 경쟁의 이익을 국민이 누리는 것이 ‘선진사법’이다. 악성 법조비리로 지탄받는 시점에 사시정원 감축론부터 내세우는 데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먼저 내부비리 척결을 위한 확실한 방안부터 실천하고 나아가 법률서비스 체계의 혁신,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문성 제고에 앞장설 일이다.
새로운 사법개혁은 법조인의 밀실로비가 아니라 국민적 공론화를 통해 이룩되어야 한다. 법조인들의 서비스 수준이 만족스러울 때가 오면 그때는 국민이 더이상의 증원을 앞장서서 반대할 것이다.
한인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