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정계개편 시도와 지도체제 개편을 둘러싼 당권파와 비당권파간의 내홍(內訌)으로 한나라당이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렸던 지난 한달 서청원(徐淸源)사무총장은 당내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었다.
서총장은 그동안 이탈 움직임을 보이는 수도권 의원들을 연쇄접촉해 달래랴, 당권파와 비당권파간의 대립을 봉합하는 중재역을 맡아 뛰랴 분초를 쪼개 눈코 뜰 새 없이 지냈다.
그 와중에 그는 ‘4·2’ 재 보궐선거의 사령탑으로 한나라당이 4개 지역을 석권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2월 중순 ‘다세대 주택’인 한나라당의 집안살림을 그가 맡았을 때만 해도 당내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선패배로 당전체가 무기력감에 빠져 있었는데다 이질적인 계파간 이해마저 엇갈린 복잡한 당내 사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민추협시절부터 야당체질이 몸에 배어있는 서총장은 ‘발로 뛰는 야당정치인’의 자세로 돌아가 이질적인 당내 세력간의 ‘접착제’역할을 자임했다.
3월 초 김종필(金鍾泌)총리임명동의안 처리를 둘러싸고 당내 의견이 양분돼 있을 때도 그는 초 재선 의원그룹, 중진그룹, 각계파 보스와 연쇄접촉해 동의안 처리와 민생현안을 분리대처하는 ‘당론 U턴’을 이끌어내는 주역을 맡았다.
지도체제 개편을 둘러싼 당내분 상황 속에서도 그는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탈당불사론’까지 내걸며 전당대회 총재경선을 요구한 이회창(李會昌)명예총재와 김윤환(金潤煥)고문 등 비당권파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적전(敵前)분열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설득해낸 것.
이같은 서총장의 활약 때문에 당초 그의 경질을 요구했던 비당권파측도 최근 들어 유임을 양해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그는 임시전당대회 소집요건과 관련, 비당권파가 조순(趙淳)총재의 소집권을 명기한 당헌 부칙조항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 막판 분란이 일자 또다시 중재자로 나섰다. ‘정치적인 약속을 서로 믿어야 한다’는 논리로 양측을 설득, 타협을 이루어낼 생각이다.
서총장의 막판 조정역할이 주목된다.
〈이동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