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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생각하며]이관우/「경제의 봄」은 절로 오지않아

입력 | 1998-04-09 19:55:00


봄이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가 겹쳐 춥기만 했던 겨울도 지나고 거리에는 가벼운 옷차림의 젊음이 싱그럽다.

경제는 여전히 어렵지만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 수출이 늘고 외환보유고도 증가하고 있다. 다행이다. 우리를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시각도 바뀌고 있다. 지난달 초순 단기외채 연장과 외화자금 조달을 위해 싱가포르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을 들렀을 때도 이러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극심한 외환위기를 겪었던 지난해 말에 비해 외국 금융인들의 태도가 많이 변한 것이다. 한국에 대한 평가가 나아진 덕분에 주요 금융기관을 들러 우리나라와 우리 은행의 사정과 향후 계획을 설명하고 거래 활성화를 부탁했던 이번 출장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특히 외국 금융인들은 한국의 저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가 쉽게 진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었다. 싱가포르 4대 은행의 하나인 UOB(United Overseas Bank)의 황쭈야오(黃祖耀)회장은 “싱가포르도 63년과 74년, 80년대 초반에 불경기를 겪었지만 이번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며 “앞으로 최소한 3년 이상의 고통스런 기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위기가 동남아는 물론 일본까지 포함하고 있는데다 한국을 비롯한 경제 위기 당사국들의 외채 규모가 너무 커 원리금 상환기간이 오래 걸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분들도 대개 같은 의견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우리나라만큼은 다른 나라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전국민이 참여한 ‘금 모으기 운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금 모으기 운동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인의 외채 상환의지가 확실하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이역만리에서 우리 국민에 대한 찬사를 들으니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

외채상환을 위한 온 국민의 노력에 우리 금융인이 기여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궁리했다. 이달부터 우리 은행이 전개하고 있는 ‘IMF경제위기 극복 3천만 저축운동’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국민 3천만명이 한 사람당 1천달러를 원화나 외화로 예금하면 약 3백억달러를 모을 수 있다.

이 자금으로 중소기업을 지원함으로써 수출을 늘리고 경상수지 흑자폭을 확대해 하루바삐 IMF체제에서 졸업하자는 것이 이 운동의 취지다. 경제계와 언론계에서도 이같은 구상을 실현하는데 힘을 보태주어 한국방송공사와 한국경제신문 대한상공회의소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가 공동 주최하고 있다. 이 운동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면 우리 경제도 IMF체제를 조기에 졸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최근 사회일각에서 되살아나는 과소비풍조는 이런 기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고 있다. 혹시 외국인들이 보내는 찬사와 한국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평가가 우리로 하여금 자만심을 가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자만심은 버리되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저력을 자부심으로 간직하고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모든 것을 추슬러볼 때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계절은 봄이지만 경제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IMF라는 현실은 가혹하다.

지원조건도 이행하기 매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잘못을 자성하는 한편 이를 지켜 나가면서 우리 경제구조를 변혁한다면 우리는 다시없는 재도약의 기회를 움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