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새음반]장한나 「하이든 협주곡집」

입력 | 1998-04-10 19:57:00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듯 냉철한 정신과의사 출신 지휘자. 만 열두살을 갓 넘긴 첼로 신동. 두사람의 첫 만남이 썩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95년 3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내한연주회.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어린 첼리스트로 협연자를 바꾸자는 갑작스러운 주최측의 제안에 지휘자인 주세페 시노폴리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속에 하이든 협주곡의 리허설이 시작됐고, 관현악의 전주에 이어 낭랑한 첼로 연주가 흘러나왔다. 굳었던 지휘자의 눈매가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유럽에서 살아본 적도 없는 꼬마가 어떻게 하이든을 이렇게도 잘 이해하는지 모르겠다.”

같은 악단의 반주로 하이든의 협주곡을 녹음하자고 제안한 사람도 시노폴리였다. 이번주 발매된 장한나의 두번째 음반은 바로 그 제안의 결실이다. 하이든의 협주곡 1번 C장조, 2번 D장조(EMI). 음반에는 유명한 후원자들의 경쟁섞인 지원도 만만치 않게 반영됐다. 첫 음반(생상스 첼로협주곡 외)에서 지휘를 맡았던 로스트로포비치는 자신이 쓴 카덴차를 2번협주곡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로스트로포비치가 한나의 뒤를 보아준다면 나는 양보해야지…”라며 능청을 떨던 미샤 마이스키는 자신의 활을 건네며 ‘멋진 연주’를 격려했다.

하이든의 두 협주곡은 첼리스트들에게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 시종일관 유쾌함이 앞서지만 우아함과 활력으로 치밀한 조형을 구축해내야 하는 작품이다. 앞서 발표된 생상스의 협주곡이 첼리스트의 용량에 다소 ‘넘친다’고 불평했던 사람들도 한나의 매끈한 음색과 우아한 표정에는 OK사인을 내고 말 듯하다.

그러나 아쉬움도 짙게 남는다. 종종 지적돼온 ‘과감성의 부족’이 그것. C장조 협주곡의 3악장에서는 활력있는 전주에 이어 솔로부가 시작되자마자 미세한 속도의 차이가 드러난다. 결국 반주부가 템포를 늘여 맞추면서 활력이 떨어져버리고 만다. 하이든 특유의 박차오르는 듯한 상행음형이나 손뼉치는 듯한 반복음표에서도 더 템포를 당겨주며 깊게 그어댔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요요마의 휘날리는 것 같은 날렵함(소니)이나 로스트로포비치의 잡아삼킬 듯한 활기(EMI)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충족감을 안겨주기엔 장한나는 힘이 부친다. 그래서인지 영국 음반지 그라모폰의 평도 ‘조건부 승인’의 뉘앙스를 깔고 있다.

“장한나를 숭배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음반에서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를 지나 숙녀에 접어드는 ‘요정’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편이 좋을 듯. 다음 음반으로는 샤를 뒤트와 지휘 몬트리올 교향악단 반주로 소품 모음집이 예정돼 있다. 02―3449―9423(EMI)

〈유윤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