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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이도성/도려내야 할 「대선자금」환부

입력 | 1998-04-13 19:40:00


87년 민주화 투쟁 때 최대의 화두는 단연 ‘대통령직선제 쟁취’였다. 당시 직선제는 그 자체가 민주화의 상징이요, 결론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당시 집권세력이 직선제를 수용했을 때 대표적 정적이었던 김대중씨(DJ)마저 “그들에게 인간적 신뢰가 간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나 할까. ‘유신’이라는 정치폭력적 수단과는 또다른 방식으로 민권을 유린하고 나라를 결딴내고만 ‘마(魔)’가 끼여들었다. 바로 ‘대선자금’이라는 마수였다. 우리 정치사에 선거라는 제도가 도입된 이래 돈선거가 아닌 적이 없었지만 87년 대선 때는 사정이 달랐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씨와 대통령후보였던 노태우씨는 대선승패에 거의 생사를 걸다시피 했다.

바로 그들이 주도한 12·12, 5·17 등 80년 정변에 대한 단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뒷날 밝혀진 대로 ‘지면 죽는다’는 강박감 속에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자금을 끌어모았다. ‘돈’이야말로 그들이 믿을 수 있는 최대의 의지처요, ‘생명수’였다. 그렇게 해서 만든 선거자금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조(兆)’단위를 넘어섰고 그들은 소원대로 대선에서 이겼다.

그러나 나라는 오늘 우리가 똑똑히 보고 겪는 대로 결딴나고 말았다. 정경유착의 대형화와 부패구조의 정착, 회복불능의 단계로 치달은 관치금융의 부실화, 혼탁의 극에 이른 선거풍토와 국민의식의 오염 등 갖가지 병리현상들이 합병증을 일으키며 뒤엉키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때부터였다.

그리고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92년 대선에서 김영삼씨(YS)가 고스란히 전철을 밟았기 때문이었다. 95년 YS가 전, 노씨를 단죄할 때 이미 수많은 국민은 “그러는 당신은”이라는 물음을 던졌었다. 당시 제1야당 총재였던 DJ는 아예 “민자당이 대선에서 최소한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썼다. 김영삼대통령은 모든 것을 떳떳이 밝히고 검찰에 수사를 지시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YS로부터 되돌아온 답은 “대선자금을 밝히려 해도 밝힐 자료가 없어 안타깝다”는 한마디뿐이었다. 그후 지난 몇년간 야권(지금의 여권)과 거의 모든 언론이 그 ‘자료’라는 것을 찾아내느라 있는 힘을 기울였다. ‘과거 부패의 실체에 대한 명확한 규명없이 내일의 개혁은 없다’는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명제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자료’ 중 가장 핵심부분인 민자당의 대선자금, 즉 YS 혼자 3천80억원을 조성해 내놓았고 그중 3천34억원을 썼다는 결산보고서를 ‘뉴스플러스’가 찾아내 백일하에 공개하자(4월16일자 129호)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DJ를 비롯한 여권과 검찰은 “여론이 진상을 밝히라고 들끓는다면…” 이라며 국민에게 진상규명의 책임을 떠넘긴 채 입을 다물어버리고 무슨 이유에선지 YS측은 “맞다. 잘 정리했다”고 시인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재벌 등에 대한 수사가 다시 벌어질 경우 야기될 국가경제적 파장, 자칫 여권에 불어닥칠지 모르는 부메랑 가능성, 여전히 취약하기 짝이 없는 영남권 여론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여권의 처지 등 정상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 지난해 대선 막바지에 “전직대통령을 어려운 지경에 몰아넣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한 DJ의 의중도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간다.

그러나 칼자루를 쥔 현 집권세력이 염두에 두어야 할 더욱 중요한 문제는 당장의 고통 때문에 환부를 도려내지 않고 미봉할 경우 머지않은 장래에 맞게 될 환자의 운명이다. 그리고 전직대통령이 당할 어려움도 불행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할 현실은 그 전직대통령으로 인해 수많은 국민이 형언하기 어려운 불행을 겪고 있는 비극적 상황이다.

이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