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말을 쓰는 기자는 사할린의 한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여러 번 혼란을 느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의 방언과 상관 없는 다른 지방의 방언을 섞어 사용하는 특징적인 현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충북 영동 출신인 박을금(朴乙金·82·여)씨는 대체로 북한식 억양으로 말했지만 경우에 따라선 “그랬당게로(그렇다니까요)”와 같은 호남식 표현을 사용했다.
또 시댁이 경북이었던 탓에 “어데(아니라는 뜻의 부정어)”라는 경상도사투리도 썼으나 정작 고향인 충청도 사투리는 별로 쓰지 않았다.
이 때문에 기자는 박씨의 고향이 정말 충북인지를 거듭 확인해야 했다.
이같은 현상은 다른 한인들한테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큰 특징은 출신지역에 관계없이 북한식 표현과 억양이 많이 쓰인다는 점이었다.
“일 없어요(괜찮아요)” “후과(결과)” “∼하다 나니까(∼하다 보니까)”와 같은 북한식 표현과 억양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기자는 경상도 출신이 전체 징용자의 70%선에 이르렀다는 한인단체 관계자의 설명을 떠올리며 이를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나중에 이같은 현상이 북한식 어문교육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십년간 한국과의 교류가 단절된 상태에서 상당수 한인이 북한 출신 교원들로부터 조선어 교육을 받다보니 자연스럽게 북한식 말투가 한인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게 됐다는 게 현지인들의 설명이었다.
게다가 공식적으로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한국어를 쓰다 보니 자주 접하는 이웃이나 동료가 쓰는 말씨를 출신지역과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따라 배우게 된 측면도 있다는 것.
물론 최근엔 한국 위성TV와 라디오를 수신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고 한국에서 어문교육도 지원하고 있어 양상이 조금씩 바뀌고는 있었다.
오랜만에 기자로부터 서울말을 들은 노인들은 도리어 “무슨 말인지 잘 못알아 듣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남과 북의 말과 글이 뒤섞여 쓰이는 사할린에서는 최소한 언어측면의 통일이 먼저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취재과정에서 자연스레 들었다.
〈한기흥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