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처음’은 설렘으로 다가온다. 95년8월 손꼽아 기다려온 첫 휴가. 내 힘으로 돈을 벌어 처음 가는 휴가인 만큼 행선지를 결정하고 계획을 세우느라 한달 전부터 유난을 떨었다. 결국 낙점한 곳이 보길도. 문학을 전공한 내게 윤선도의 섬으로 기억된 곳이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심야고속버스를 타고 해남 땅끝마을까지 간 뒤 다시 배를 타고 한시간을 가서야 닿았다. 초등학생 글씨로 뱃시간을 적어놓은 구멍가게, 손님을 기다리며 일렬로 늘어서 있던 갤로퍼택시, 질펀한 남도사투리가 보길도의 첫인상이었다. 여장을 풀고 제일 먼저 가본 곳이 윤선도의 세연정. 돌로 둑을 쌓아 가둔 물을 다시 인공 연못으로 끌어들인 다음 가운데에다 정자를 세웠다는 세연정. 이곳에서 윤선도는 신선처럼 어부사시사와 오우가를 노래했다고 한다. 세연정을 나와 30여분 달리니 중리해수욕장. 햇살은 적당히 따가웠고 바다는 시원했다.
정작 여행은 내게 있어 ‘장소’로보다는 특정한 한 장면으로 기억될 때가 많다. 친구와 둘이 낯선 바닷가를 따라 8월의 뜨거운 아스팔트를 맨발로 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 왼쪽에는 파란 하늘과 경계를 이루는 부드러운 산이 있고 오른쪽엔 바다가 펼쳐져 있는 해안도로가 멋들어진 보길도의 그 장면들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틀을 묵고 떠나올 때,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했다며 꼬깃꼬깃 돈 천원을 쥐어주시면서 커피나 뽑아 마시라던 민박집 아주머니의 마음씀씀이가 그곳을 더욱 따뜻한 곳으로 기억되게 한다. 올해로 네번째 맞는 여름휴가. 신입사원시절의 열정과 객기를 묻어둔 보길도로 다시 떠나고 싶다.
이인정(대우전자 기업문화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