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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포즈,이곳이 좋아요]인천 소래포구

입력 | 1998-04-16 19:31:00


“어머! 꽃핀 것 좀 봐.”

생애 스물네번째 봄을 맞는 김은정씨(경기 성남시 분당구 신한스포츠센터 근무). 광명시 하안동 아파트주차장에서 애인 소대호씨(28·조리사·아시아나 캐터링센터 기내식 생산팀)를 기다리다 흐드러진 봄풍경에 환성을 터뜨린다.

은정씨의 휴일은 월요일. 인천의 소래포구로 데이트를 떠나기로 했다.

경북 영덕 바닷가가 고향인 은정씨는 서울생활 6년째지만 파도소리가 언제나 귓전에 울린다. 계절이 바뀔 때면 더 심해지는 향수. 예비신랑인 대호씨가 그걸 모를 리 없다.

오후 3시. 일찍 퇴근한 대호씨가 프라이드승용차에 은정씨를 태우고 소래포구까지 달린 시간은 30분 남짓. 평일 오후의 포구는 장보러 온 아주머니들로 북적거린다.

“카페에서 만나는 것보다 얼마나 좋으냐? 사람 사는 맛이 느껴지잖아?”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12월6일. ‘99년 5월’로 결혼계획을 잡기까지 진도는 빨랐다. ‘탐문탐색을 거쳐 연애, 마지막으로 부모님 찾아뵙고…’라는 수순이 두 사람에게는 거꾸로였다. 사업상 몇년전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양가 부모가 직접 나서서 매파 노릇을 했기 때문.

소래포구로 들어가려면 꼭 건너야 하는 다리. 3년 전까지만해도 연인들을 실은 수인선 협궤열차가 다녔다는 철로 위에 지금은 발판이 깔려 걸어서 건널 수 있게 됐다. 이 곳에 설 때마다 은정씨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두사람이 이곳에 처음 온 것은 1월말. 갯바람이 몰아치는데 다리를 건너던 대호씨가 느닷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에 문득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추워서 입도 제대로 안 다물어져 받침이 마구 새던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 대호씨로서는 진지한 ‘청혼가’였지만 얼굴이 홍당무가 된 은정씨는 “느끼해, 정말 느끼해”하며 다리를 다 건너가도록 고개를 들지 못했다. 첫 프로포즈는 ‘명중’에는 실패. 그러나 불발탄은 아니었다. 이후 은정씨가 적극성을 띠기 시작한 것.

친구 애인처럼 물쓰듯 데이트경비를 뿌리는 것도 아닌 ‘짠돌이’ 대호씨에게 언제부터 은정씨가 끌린 것일까. 은정씨의 고향 부모께 이틀이 멀다하고 문안전화를 하는 효심 때문에? 아니면 “은정아, 나 오늘 올들어 처음 참외 먹었는데 네 생각이 나더라”하는 따뜻함 때문에?

아니야. 대호씨가 제일 믿음직해 보일 때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녁마다 “나 학교(안산공업전문대 호텔조리과 야간부) 간다”며 씩씩하게 손 흔들고 돌아설 때야. 그 뒷모습을 보며 늘 기원하지. 내가 도와줄게요. 당신이 꿈꾸는 대로 10년 후엔 꼭 강단에 서요.

어느새 밀물시간. 배들이 묶인 펄로 내려서며 대호씨는 “징그럽다”는 은정씨의 투정을 못 들은 체 덥석 허리를 휘감는다. 꼭 잡은 대호씨의 손을 처음이라는 듯 꼼꼼히 들여다보던 은정씨.

“내가 처음에 오빠 손 너무 싫어했다는 거 알아? 고생 많이 한 흔적이 드러나서…. 이젠 안 그래. 지금은 우리가 작은 존재지만 먼 훗날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난 믿어.”

멋쩍은 듯 먼산 바라보며 씽긋 웃던 대호씨. 이윽고….

“저기 은정아, 내년에 웨딩드레스 입으려면 너 살 좀 빼야지?”

우당탕 애인의 등을 내려치는 은정씨. 두 연인의 투명한 웃음 소리에 눈 시리게 부서지는 봄햇살.

〈정은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