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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심 칼럼]『나는 무너지고 싶지 않다』

입력 | 1998-04-17 19:44:00


‘없구나 없구나/스물일곱 이 한 목숨/밥벌 자리 하나 없구나’

지금은 ‘혁명가’로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시인 박노해. 검붉은 노을이 하늘을 뒤덮을 때까지 하루 종일 일거리를 찾아 공단을 헤매다가 지친 다리를 끌며 조명 불빛 얼룩진 아스팔트 위를 허청허청 걸었다. 그는 절규했다. ‘에라 바겐세일이다. 일당 3천원도 좋고 3천5백원도 좋으니 제발 팔려라, 바겐세일로 바겐세일로’. 헐값에도 그의 노동을 사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이 80년대 초였다.

▼ 절망에 내몰린 노숙자들 ▼

지금은 그로부터 20년이 다 된 1998년이다. 올해 50세의 김씨는 일주일 내내 화곡동 면목동 성남 등지를 걸어서 오가며 필사적으로 일자리를 찾았다. 그 일주일 동안 단 하루도 일을 못했다. 밥은 하루 한끼 무료급식처를 찾아가 때우고 잠은 길거리에서 웅크린 새우잠으로 때웠다. 노숙자(露宿者)다.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가 퉁퉁 부은 다리로 남산에 올라가 서울 시내를 멍하니 내려다보며 시름에 잠기는 것이 일과다.

집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30여년 동안 피혁가공업 한가지 일만 했다. 한때는 종업원 수십명을 거느리기도 했다가 최근 몇년 사이 가내공장으로 규모를 줄였지만 국제통화기금(IMF)한파 이후 빚만 쌓였다. 빚이 쌓이면서 가정불화도 쌓였다.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왔다. 그가 고개를 푹 떨구고 들릴듯 말듯 말했다. “내 나름대로 기술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만 있다면…. 정부에서 뭔가 조금만 지원해준다면….”

그를 만난 것은 홍사덕(洪思德)의원의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이 노숙자들에게 아침 라면을 끓여주는 서울역 뒤쪽 광장, 새벽 6시였다. 또 다른 노숙자 25세 이씨와 47세 박씨를 만난 곳도 그곳이었다. 지방 전문대를 졸업하고 제대하자마자 구한 첫 직장이 취직 2개월만에 도산해 졸지에 실직자가 된 이씨는 노숙 3개월째에 근근이 일주일짜리 막일을 구해 잠시 시골로 내려갔다.

노숙 4개월을 넘긴 박씨는 그동안 한달 평균 3일밖에 일을 하지 못했다. 하루 벌어 열흘을 산 것이다. 일당 1만5천원짜리 청소원 일도 행운이었다. 5개월 전까지만 해도 종업원 1백명을 둔 중소기업 사장이었던 그는 부도로 회사를 날리고 전재산을 팔아 종업원 퇴직금을 정산한 뒤 단돈 10만원을 손에 쥐고 거리로 나섰다. 누구에게 구원을 청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를 원망하고 싶지도 않았다. 혼자서 자신과 처절하게 싸우리라 각오했다.

그는 지금도 정신과 육체가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밤이면 지하철역이나 보도에서 노숙하지 않고 날이 밝을 때까지 어두운 거리를 무작정 걷는다. 그렇게 걷는 거리가 하루 40㎞. 잠은 낮시간에 공원 벤치에서 잠깐씩 눈을 붙이는 것으로, 옷은 종교단체가 주는 구호품으로, 굶주림은 하루 한끼 무료급식으로 힘겹게 버틴다. 그의 굳게 다문 입, 눈물 글썽이는 붉게 충혈된 눈은 말하고 있었다. “나는 무너지고 싶지 않다. 일하고 싶다. 일어서고 싶다….”

▼ 그들은 다시 일하고 싶다 ▼

서울시는 2천여명에 달하는 서울시내 노숙자들을 다음달 중순부터 임시합숙소에 수용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러나 노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노숙 6개월 이내 ‘일자리 찾아 떠도는 임시 노숙자’들은 합숙소에 큰 관심이 없다. 구호는 고맙지만 합숙소행은 부랑자나 행려자로 전락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애타게 찾는 것은 일이다. 정부가 5천1백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각종 공공근로사업을 손꼽아 기다린다.

노숙자는 매일 늘고 있다. 일용직 근로자, 하급 서비스업 종사자, 영세 자영업자, 해고 생산직 노동자, 공무원 회사원 등 모든 직종, 모든 연령을 망라하고 있다. 이들을 껴안아야 한다. 이들이 망가지거나 ‘거리의 폭탄’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

김종심(논설실장)